세포 속 ‘우편배달부’도 교통 체증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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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 속 ‘우편배달부’도 교통 체증 겪는다
  • 김성규 기자
  • 승인 2023.11.2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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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고해상도 비표지 간섭산란 현미경 개발
출‧퇴근 길 도로 같은 교통 체증 현상이 세포 속에서도 발생
울의 내부 및 외곽 도로망으로 표현한 세포 속 소포들의 트래픽 현상
울의 내부 및 외곽 도로망으로 표현한 세포 속 소포들의 트래픽 현상

세포 내에서 물질을 운송하는 소포(vesicle)가 출퇴근 길 도로 정체 같은 교통 체증을 겪고 있음이 확인됐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노도영)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조민행 단장(고려대 화학과 교수)과 홍석철 교수(고려대 물리학과) 연구팀은 살아있는 세포 속에서 활발하게 이동하고 있는 소포의 움직임만을 선택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새로운 현미경을 개발했다.

얇은 지질막으로 둘러싸인 작은 주머니 모양의 소포는 호르몬, 효소, 신경 물질 등을 그 속에 담아 이들이 필요한 세포 내 적시 적소에 배달하는 일종의 우편배달부. 우편물 오배송처럼 소포가 엉뚱한 곳에 물질을 배달하거나, 운송이 지연되면 다양한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소포 수송(vesicle traffic)의 작용 원리를 규명한 세 명의 연구자는 201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소포의 수송 원리, 소포와 세포 소기관의 상호작용 분석 등 연구는 형광 현미경을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형광 현미경을 이용하면 형광 표지된 특정 소포들의 수송 과정만 관찰할 수 있고, 형광 신호가 유지될 수 있는 제한된 시간 내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 세포 속의 복잡한 골격망을 따라 수송되는 수많은 소포의 전체적인 수송 현상을 시각화하는 것이 어려웠다.

간섭산란 현미경을 이용해 획득한 세포 속 소포들의 트래픽.각각의 영상은 50Hz의 촬영 속도로 180초 동안(9,000 frame에 해당) 세포의 라멜리포듐 영역에서 포착된 백여 개 이상 소포들의 운동을 추적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영상 내 색상은, 각각의 픽셀 위치에서 일정 시간 동안 관찰된 소포들의 개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세포 골격망 상에서의 트래픽 밀도(traffic density)를 보여준다. 그림 하단의 노란 점선은 세포의 가장자리 경계면을 나타낸다.
간섭산란 현미경을 이용해 획득한 세포 속 소포들의 트래픽.각각의 영상은 50Hz의 촬영 속도로 180초 동안(9,000 frame에 해당) 세포의 라멜리포듐 영역에서 포착된 백여 개 이상 소포들의 운동을 추적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영상 내 색상은, 각각의 픽셀 위치에서 일정 시간 동안 관찰된 소포들의 개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세포 골격망 상에서의 트래픽 밀도(traffic density)를 보여준다. 그림 하단의 노란 점선은 세포의 가장자리 경계면을 나타낸다.

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은 자체 개발한 간섭산란 현미경을 이용해 복잡한 세포 속에서 이동하고 있는 소포들의 이동 궤적을 장시간 정밀하게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30분이 넘는 장시간 동안 세포의 핵 주변에서부터 라멜리포듐으로 이어지는 영역에서 100개 이상 소포들의 이동 궤적을 동시에 추적했다.

추적 영상은 초당 50Hz의 영상 촬영 속도(1초에 50장의 이미지 재생)로 얻었다. 이 과정에서 획득한 소포 위치 정보를 이용해 세포 내부의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는 골격망의 공간적 분포를 고해상도로 재구성하는 데도 성공했다.

연구진은 기존 연구에서 알려진 바 없는 소포의 새로운 수송 특성도 확인했다. 수송 과정에서 소포들이 국소적으로 이동 정체 현상을 겪기도 하지만, 여러 소포들이 함께 긴 거리를 동일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집단 수송 방식, 수송 중인 소포 뒤에 달라붙어 함께 이동하는 히치하이킹 수송 방식 등을 이용해 세포 속 정체 현상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수송 전략을 갖추고 있음을 밝혀냈다.

세포 속 국소적 영역에서 관찰된 소포 수송 정체 현상[그림 2]의 다섯 번째 그림에 표시된 흰색 사각 영역에 소포들이 밀집되어 있음이 관찰됐다. 이 영역의 소포들은 서로 이동을 가로막아 정상적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 맨 오른쪽 그림은 왼편에 나타낸 모든 소포들의 이동 궤적을 그린 것인데, 정체되어 움직임이 제한된 소포들의 궤적은 회색으로 표시했다.
세포 속 국소적 영역에서 관찰된 소포 수송 정체 현상.
[그림 2]의 다섯 번째 그림에 표시된 흰색 사각 영역에 소포들이 밀집되어 있음이 관찰됐다. 이 영역의 소포들은 서로 이동을 가로막아 정상적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 맨 오른쪽 그림은 왼편에 나타낸 모든 소포들의 이동 궤적을 그린 것인데, 정체되어 움직임이 제한된 소포들의 궤적은 회색으로 표시했다.

1저자인 박진성 연구원은 매우 복잡하고 미시적 세계인 세포 속 환경에서 대도시 사람들이 도로 위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교통 체증 현상이 유사하게 나타났다세포가 트래픽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채택하는 효율적 수송 전략을 찾아 생명현상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규명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연구진은 개발한 현미경에 형광 표지된 세포 속 분자를 관찰할 수 있는 형광 현미경을 결합한 관찰 도구도 개발했다. 고속고해상도 간섭산란 영상 기법에 화학선택적 형광 영상 기법을 접목하여 관찰 정밀도를 한층 더 높인 것이다.

홍석철 교수는 생명현상을 고감도고속장기간 관찰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생명현상을 분자들의 거동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전주기적 추적 관찰을 통해 의학적으로 큰 파급력을 갖는 발견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행 단장은 살아있는 세포를 형광에 의존하지 않고 초고분해능으로 관찰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생명현상을 미시적 관점에서 생생하게 밝혀낼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14(한국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IF 16.6)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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