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의 시절잡설]윤동주의 참회록, 전두환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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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의 시절잡설]윤동주의 참회록, 전두환의 회고록
  • 김성서
  • 승인 2018.06.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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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승 5·18구속부상자회장이 5일 광주 서구 5·18기념재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17.4.5/뉴스1

[편집자주] 박현 시인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소박한 대답을 세상을 ‘흘겨보면서’ 나누고자 한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의 뒷모양이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참회록(懺悔錄)”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쓴 글

1942년 1월 24일 윤동주가 쓴 『참회록』이라는 시이다. ‘참회’라는 말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깊이 뉘우침’이라는 뜻이니 “참회록(懺悔錄)”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쓴 글’이라는 말이다. 일제 강점기의 시대적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현실에 저항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부끄러움을 윤동주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그의 절실한 고백은 “밤이면 밤마다”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는 염결한 모습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 처절한 고백 끝에 윤동주는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과 마주선다. 삶에 대한 투명하고 순결한 지향은 언제나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全 “5·18과 자신은 상처 치유용 제물이 됐다” 망발

전두환이 1979년 10·26부터 최근까지 있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 3권을 냈다. 『전두환 회고록』(1~3권)에서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서술하면서 유감스럽게도 ‘사태’나 ‘폭동’으로 표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5·18 당시 발포명령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1997년 있었던 대법원의 ‘12·12, 5·18 사건’ 확정판결을 거스르는 반역사적 발언이다. 최근 논란이 된 헬기 사격도 부인했다. 회고록에서 그는 5·18 당시 북한의 개입 가능성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무모하고 무지하게도 그는 5·18과 자신이 상처 치유용 ‘제물’이 됐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으며, 재조사와 재평가도 요구했다.

全 내란으로 판정됐던 광주 사태가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

“빼앗은 장갑차를 끌고 와 국군을 죽이고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으로 국군을 사살한 행동을 3·1 운동과 같은 ‘운동’이라고 부를 순 없다. 군수공장과 무기고를 습격해 무장한 시민군이 국군을 공격했던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내란으로 판정됐던 광주사태는 어느 날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규정되더니 어느 순간 ‘민주화 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를 공론화하는 길은 봉쇄된 것 같다. 쿠데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부정·긍정의 구분을 하지 않듯 폭동도 부정·긍정의 의미를 따질 필요 없이 폭동은 폭동일 뿐이다.”

全 시위대 600명은 북한의 특수군

“‘시위대 600명은 북한의 특수군’이라는 주장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만원 시스템공학 박사는 광주사태가 북한이 특수군을 투입해서 공작한 ‘폭동’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교도소를 습격해 수감자들을 해방하는 것은 혁명군이 취하는 교과서적인 작전이다.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미전향 장기수들, 간첩들을 해방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고 단언해도 무리가 없다. 교도소 습격은 북한의 고정간첩 또는 5·18을 전후해 급파된 북한 특수전 요원들이 개입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全 나에 대한 비난으로 상처가 사그라진다면 감내하는 것이 미덕

“지금까지 나에게 가해져 온 모든 악담과 증오와 저주의 목소리는 주로 광주사태에서 기인한다. 피해와 희생이 컸던 만큼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십자가는 내가 지게 됐다. 나를 비난하고 모욕 주고 저주함으로써 상처와 분노가 사그라진다면 나로서도 감내하는 것이 미덕이다. 진실의 전모가 밝혀지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가능한 조사만이라도 이루어져야 한다.”

전두환과 그 일당들, “여전히 광주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

그는 광주를 여전히 “사태”로 기억하고 있었다. 미 정부 군사·외교 비밀문서를 분석한 언론(<경향신문> 2017년 4월 13일 기사 참조)의 기사를 살펴보면 전두환의 시각이 얼마나 오만하게 왜곡되어 있는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전두환과 그 일당들, 역사의 진실을 믿지 않으려는 패거리들은 여전히 광주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거짓을 외치고 있으나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팩트이다.

부창부수도 이만하면 국보급

“우리 내외도 5·18 사태의 억울한 희생자”라는 이순자의 망언은 기가 막힐 지경이다. 부창부수도 이만하면 국보급이다. 아무리 부부는 닮는다지만 후안무치는 어찌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가. 과연 이 부부가 “제물”, “십자가”, “희생” 등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가 모르겠다. 도덕적 규범이 결여된 자에게 도덕을 묻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사람 흉내를 내는 짐승이 아니라면 부디 그대들의 거울을 들여다보라.

제 죄를 모르고 뻔뻔스러운

조선 중종 때 남곤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젊어서 무척 총명하였다.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혀 벼슬길에 나아간 남곤은 죽을 무렵 자신이 평생 지은 저술을 모조리 불태우면서 “이 글을 남겨 후세 사람들에게까지 욕을 먹을 필요는 없다”라고 하였다 한다. 남곤이 훌륭한 자였는지는 모를 일이나 적어도 남곤은 현명한 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제 죄를 모르고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두 부부를 비춰볼진대.

 

201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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