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의 시절잡설]청년들이여...'똥군기'를 징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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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의 시절잡설]청년들이여...'똥군기'를 징계하라!
  • 김성서
  • 승인 2018.06.22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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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입지 말라며 신입생 '똥군기' 잡는 대학 선배들 2017.3.16 MBN 보도 화면 캡처
[편집자주] 박현 시인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소박한 대답을 세상을 ‘흘겨보면서’ 나누고자 한다.

삶은 계란의 껍질이벗겨지듯묵은 사랑이벗겨질 때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먼지 앉은 석경 너머로너의 그림자가움직이듯묵은 사랑이움직일 때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새벽에 준 조로의 물이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고젖어있듯이묵은 사랑이뉘우치는 마음의 한복판에젖어 있을 때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김수영이 쓴 「파밭 가에서」(1959)라는 시이다. 시의 소재인 대파의 성장을 안다면 내용이 잘 이해되리라. 노지에서 겨울을 난 대파는 봄이 오면 작년의 몸 안에서 새순을 올린다. 용케 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견딘 새순이 봄이 되면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이 새순이 무럭무럭 새로운 몸으로 자라고, 급기야 거기서 꽃도 피운다. 김수영은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것 일부를 혹은 전부를 버려야 한다는 역설적 진리를 대파를 통해 노래한다. 다가올 새 시대를 맞기 위한 우리의 자세를 시인의 눈은 예언한 듯하다. 

3월 학기 초의 대학가는 설렘과 기대가 충만하다.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학은 대학이기 때문이다. 드넓은 캠퍼스에서 강의실을 찾지 못해 종종거리다가 강의실이 어디냐고 묻는 학생들에게서 이십대의 나를 만나곤 한다. 시들고 말라버린 과거의 나에게 새로움으로 무장한 현재가 묻고 있다. 그 충돌이 신기하다.

그러나 3월의 대학가가 늘 이렇듯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심심치 않게 접하는 소식들, 이를 테면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의 음주 사망 사고나 선배들의 군기잡기 등과 관련한 소식을 들을 때면 시들고 말라버린 과거가 현재에도 재현되고 있다는 생각에 서글픈 생각이 든다.

연세대 A학과에서 신입생들을 상대로 ‘군기’를 잡았다고 한다. 지난 25일 SNS에 올라온 익명의 글이 논란의 도화선이 되었다. 글쓴이에 따르면 연세대 A학과의 선배들이 새내기 배움터 첫날 일정이 끝난 뒤 다음날 새벽까지 ‘똥군기’를 잡았다고 한다.

선배의 지시에 따라 신입생들은 한 사람씩 선배들 앞에서 정해진 FM 구호를 “선배들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해 외쳐야 했다. FM 구호란 학교별·학과별로 정한 구호에 자신의 학번과 이름을 붙여 말하는 자기소개 방식을 말한다고 한다. 소리가 작거나 구호가 틀리면 선배들의 폭언이 쏟아졌다.

한 명이 구호를 외치는 동안 나머지 신입생들은 “악” 소리를 외치며 장단을 맞춰야 한다. FM 구호 복창이 끝나면 미리 준비한 개인기를 보여줘야 한단다. 선배들을 웃기면 술을 받고, 웃기지 못하면 또 폭언을 듣는다고 했다.

이 글을 읽은 학생들은 “학교 지나다니면서 새내기들과 후배들 얼굴 보기가 너무 민망하고 부끄럽다. 용기가 없어서 나서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던 저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라거나 “유대는 유대고 똥군기는 똥군기다.

유대라는 멋진 단어를 그런 식의 명분 삼는데 사용하지 않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댓글로 글쓴이를 지지를 하고 있다. A학과 재학생들은 “우리는 이러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 이 대학에 온 게 아니다. 우리는 엄연한 폭력 행위를 당했다”며 행사를 주도한 해당 학과 학회장단에 입장문을 발표하고 사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A학과가 속한 단과대 학생회와 A과 교수 등 관계자들은 31일 긴급총회를 열어 사건의 진위와 징계 수준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2017. 3. 30. 중앙일보 기사 참조). 

이제 세상은 대학생들을 비난할 것이다. 가해 대학생들의 잘못을 비난하며 급기야 대학 무용론이 나올 것이다. 대학생이 더 이상 대학생이 아닌 지경이라고 개탄할 것이다. 철딱서니가 없다는 말은 애교다.

요즘 것들이 다 그렇지 하는 자조는 누구를 향한 것인가. ‘우리’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라고 기성세대는 목청을 높인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보지 않고 배우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결코 대학생들이 아니다. 관습이라는 미명으로, 전통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그 악습을 알면서도 눈 감았던 자들이 누구인가. 학생 지도가 수월하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역할을 고학년 학생들에게 떠넘겼던 자들이 누구인가 물어야 한다.

A학과가 속한 단과대 학생회와 A과 교수 등 관계자들은 31일 긴급총회를 열어 사건의 진위와 “징계 수준”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 징계의 대상에 학생들만 포함된다면 이와 같은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어른이 어른인 이유는 어른값을 하기 때문이고, 지식인이 지식인인 이유는 지식인값을 하기 때문이다. 어른값을 하는 어른이 없고, 지식인값을 하는 지식인이 없는 오늘 누가 누구를 “징계”한단 말인가. 그러니 청년들이여, 이제 감히 너희가 “똥군기”를 징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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