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률의 다른생각] 1퍼센트는 어떻게 99퍼센트를 지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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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률의 다른생각] 1퍼센트는 어떻게 99퍼센트를 지배하는가
  • 김성서
  • 승인 2018.06.22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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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억원대 뇌물공여와 횡령 등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17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 삼성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편집자주]고광률은 소설가이자 문학박사이다. 1990년 엔솔로지(『아버지의 나라』 실천문학)에 「통증」으로 등단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뿔』(은행나무) 등을 발표하였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서울에서 잡지사 정치 관련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를 지냈고, 대중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문예창작 및 미디어 관련 출강을 하고 있다.

비만 오면 질척이는 위아래 두 마을이 있었다. 불편을 느껴오던 윗마을이 먼저 나서서 관과 긴 건의와 협의 끝에 길을 포장했다. 이를 본 아랫마을에서 자신들이 다니는 길도 포장해 줄 것을 요구했다. 관은 예산이 없어 그러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언제까지 기다리려야 하느냐고 묻자, 그건 딱히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포장을 못한 아랫마을이 말했다. 그렇다면 불공평한 편파행정을 한 것이니, 이미 포장을 한 윗마을 도로를 뜯어 우리 마을과 같이 해달라고 요구했다. 

2016년 철도공사 노조원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할 때, 정부와 언론은 기관사의 연봉이 1억에 가깝다면서 귀족 노동자의 파렴치한 욕심인 양 쟁의에 참여한 기관사들을 매도했다. 마치 이들이 동료 철도원들의 몫이라도 빼앗아가는 양 여론전을 펼쳤다. 1억이 많다는 기준은, 그들의 노동 가치에 준하여 평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일반적인 평균 노동자들에 비할 때 많다는 논리였다. 당시 이 보도를 접한, 내가 아는 한 버스기사는 “그런 나쁜 놈들이 있느냐”라며 운전하다말고 개탄을 연발했다. 물론 그 버스기사의 분노는 자신의 연봉을 기준으로 삼아 비롯됐을 터이다. 

이런 가치 판단의 기준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앞의 사례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몸에 밴 시기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고, 뒤의 사례는 이런 집단 심리를 이용해서 정치권력이 가치판단의 프레임을 짜준 것으로부터 오는 것일 터이다.

내가 못 먹을 거, 남도 못 먹게 하겠다. 국민을 둘로 갈라 서로 다투게 하여 다스리는 것이 이른바 통치 기법이다. 물론 아주 비열한 통치술이다. 한 때 일자리 문제를 놓고도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로 갈라 경쟁 구도를 만들었다. 일자리 부족의 문제를 세대 간 이해 다툼의 문제로 프레임을 짠 것이다. 이 프레임 속에서 정권이 기성세대를 밀어준 때문인지, 2015년 8월 대통령의 업무수행에 대한 평가에서 60대 이상 72퍼센트, 20대와 30대는 각각 12퍼센트와 8퍼센트의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대한민국의 특권세력 상위 1퍼센트는 아래 99퍼센트의 균질화된 평등을 원한다. 또한 상위 20퍼센트의 부유층은 나머지 80퍼센트가 그들끼리 평등하기를 원한다. 그러니까 이 80퍼센트는 20퍼센트의 세계를 넘볼 수 없다. 균형과 평등은 80퍼센트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이 80퍼센트는 이들이 생산한 이윤 중 일정 비율을 20퍼센트에게 바치고(물론 바치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서 챙겨간다) 나머지를 가지고 분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80퍼센트 안에서는 우열이 생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기관사의 1억은 여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귀족 노동자인 것이다.

소득 최상위 1% 계층은 총소득의 12.9%를 차지하고, 재산 최상위 1% 계층은 총재산의 33.9%를 차지한다. 또한 최상위 10% 계층은 총소득의 44.9%를 차지하고, 재산 최상위 10% 계층은 총재산의 62.9%를 차지한다. 장하성 교수가 그의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2014년 통계를 근거로 주장한 내용이다.

이들이 가져가는 소득과 증식시켜나가는 재산은 이들 상위 1퍼센트끼리 또는 이들 상위 10퍼센트끼리 주고 뺏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이미 취득한 소득과 재산은 망해먹을 짓을 하지 않는 한(물론 1퍼센트에 속하면 망해먹을 짓을 해도 망하지 않는다) 공고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임금구조를 보자. 중소기업의 평균임금은 대기업의 62퍼센트 수준이고, 제조업의 경우에는 대기업의 53퍼센트 수준이다. 대기업이라 함은 고용인 300인 이상인 100대 기업을 뜻한다.

그렇다면 대기업이 창출하는 고용은 어떻게 되는가. 대기업은 19퍼센트이고, 중소기업은 81퍼센트이다. 

재벌기업이, 대기업이 잘 나가야 나라와 국민이 잘 살 수 있다는 논리는 1997년 이후 완전히 깨졌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국민총생산액과 국민 소득은 어느 정도 동반 상승했다. 그러나 1997년과 2007년 이후로는 이런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은행은 기업에 돈을 빌려줘 그 투자이윤을 통해 이자를 얻는 것이 아니라, 가계에 돈을 빌려줘 이자를 얻는다. 기업에서 빌리는 돈은 제품과 이윤을 생산하지만 가계에서 빌리는 돈은 대부분 부동산 투자로 쓰인다. 이런 은행원의 평균임금이 대기업보다 높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1300조에 달했다. 이 부채는 부동산 거품이 사라지는 순간 터져버릴 폭탄이다. 

한국의 경제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재벌과 대기업 위주로 성장해왔다. 정부는 외국으로부터 값싼 원자재를 들여와 공급했고, 값싼 임금과 생산 및 판매 관련 인프라 지원 등 각종 특혜는 물론 각종 세제 혜택을 줬고, 그것도 모자라 1980년대까지는 국산품을 애용하도록 강제했다. 재벌과 대기업은 이런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물론 그 대가로 노동자 몫의 숱한 돈을 정치권에 상납을 했지만) 자본과 기술을 축적하여 오늘날과 같은 세계 경쟁력을 기른 것이다. 다시 말해 국민적 희생 속에서 급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벌과 대기업은 이런 국민들에게 보답은커녕 동네 빵가게와 옷가게 심지어는 구멍가게까지 접수를 하고 말았다. 자유시장경제의 핵심은 공정한 경쟁이다. 그런데 이 공정한 경쟁이 대기업의 횡포로 인해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이다.

재벌과 대기업의 특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성장할 때까지만 도운 것이 아니라, 성장을 한 후에도 뒷배를 봐줬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기업은 자신들이 빌려 쓴 돈을 갚지 못해 국가가 보증을 서주고 국민의 세금(공적자금)으로 그 빚을 갚아주는 사태가 생겼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기사회생한 재벌과 대기업은 고용을 창출하지 않았다.

이제 국민의 세금으로 위기를 벗어나 다시 재기했으니 일자리를 마련해달라는 대통령에게 어느 재벌기업 총수는 이렇게 말했다. 자유시장주의 경제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고용 창출이 강제되어지는 것이냐, 여기가 사회주의국가냐, 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며 외면했다. 이때 총수에게 일자리를 구걸하던 대통령은 핀잔을 당했는데, 자신의 세금으로 그 대기업을 살린 국민은 정작 침묵했다. 마땅히 주장해야 할 권리를 포기한 것이다. 잘못된 재벌 공포증과 재벌 집착증 등 재벌경제논리에 세뇌당한 때문이다.

최순실과 함께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박근혜 정권은 변명과 버티기로 일관하면서 국민들을 두 패로 갈라 싸움질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과 진실과 정의는 사라지고, 정체불명의 애국이데올로기와 관제데모로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또 1퍼센트의 악이 99퍼센트의 선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이다.

99퍼센트의 선을 지배하는 1퍼센트 악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99퍼센트의 무책임한 용인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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