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수출 62% 담당하는데…게임 질병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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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수출 62% 담당하는데…게임 질병 취급”
  • 김성서
  • 승인 2019.05.2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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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상반기 게임산업 수출액 2조1432억원
사회적 인식은 배타적…전문가 ‘과잉규제’ 우려
게임업계 “매맞는 효자…사회적 갈등 불보듯”
최근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한 가운데 업계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K팝보다 8배 큰 콘텐츠 산업이지만 부정적인 이미지가 추가돼 게임산업이 위축되고 규제가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사진은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의 모습.뉴스1

방탄소년단(BTS)으로 대표되는 ‘K팝’은 대한민국의 대표 콘텐츠다. K팝은 대한민국을 널리 알리는 민간 외교관이자 국내 콘텐츠 산업 부가가치를 끌어올리는 ‘수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BTS처럼 열혈 팬덤을 형성하는 것은 물론, 매출과 수출 규모는 K팝보다 무려 8배나 더 큰 콘텐츠 산업이 있다. 게임산업이 그 주인공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며 업계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게임은 매맞는 효자”라는 자조 섞인 한탄도 나온다. 가뜩이나 부정적인 이미지인 게임산업이 위축되고 규제가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매출 19%·수출 49% 증가콘텐츠산업 주도

게임산업은 국내 콘텐츠 사업을 이끄는 선두주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국내 경제성장률이 2%대 저성장을 이어가고 무역수지 적자 품목이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게임산업 매출은 급등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2월 발표한 2018년 상반기 국내 콘텐츠산업동향 조사에 따르면 게임분야 매출은 이 기간에 6조5873억8400만원을 기록, 전년 동기대비 19.4% 급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콘텐츠 산업 매출이 7.7% 성장한 것과 비교해도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K팝으로 대표되는 음악콘텐츠 매출은 9.2% 성장했다.

게임 산업의 수출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다. 지난해 상반기 게임산업 수출액은 총 2조1432억800만원을 달성했는데, 이는 전년대비 49.1% 급증한 것이다.

전체 콘텐츠 산업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하다. 지난해 상반기 모든 콘텐츠산업의 수출액은 3조4491억8100만원인데, 게임산업의 수출비중은 62.13%에 달한다. 방송 콘텐츠 수출이 20% 감소하고 음악콘텐츠 수출이 0.9% 상승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게임산업이 콘텐츠 수출을 책임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산업군 중 게임산업의 고용성장률은 압도적으로 높다. 게임산업 상장사 기준 지난해 상반기 고용은 27.2% 증가했다. 전체 게임산업 종사자로 확대해도 2% 늘었다. 음악 등 타 콘텐츠 산업 종사자가 같은 기간 감소하거나 0%대로 사실상 정체였던 것과 대조된다.

콘텐츠산업 매출·수출 규모 및 국내 게임산업의 매출·수출 비중.뉴스1

애들 공부 방해한다며 천대받는 게임

산업과 고용 양 측면에서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를 하는 게임산업이지만 게임 자체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배타적이다. 최승우 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은 “자동차, 중공업, 스마트폰 사업은 대한민국의 대표 산업으로 인식돼 국민들이 자랑스러워하고 응원한다”면서 “이보다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게임에 대해서는 ‘애들 공부 방해하는 짓’, ‘백수들이나 하는 놀이’라며 천대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한 것을 반기는 목소리도 있다. 게임중독이 실제로 매우 심각한 ‘질병’이며, 이제 제대로 된 의사의 처방과 치료를 받을 길이 열렸다고 보는 시각이다. 질병코드가 부여되면 보건당국은 질병 관련 통계를 작성, 발표하게 되고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배정해 집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번 WHO의 질병코드 등재가 게임산업 위축을 초래할 ‘과잉규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게임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가하고 있는 중국은 ‘어린이 청소년 근시 예방 종합 방안’을 통해 미성년자 게임시간 제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미성년자의 ‘게임 시간’을 제한하는 것으로, 향후 실명 인증을 기반으로 게임 소비 시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문제는 이미 ‘게임 셧다운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내에서도 WHO가 질병으로까지 인정한 ‘게임중독’을 막기 위해 더 심한 규제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게임산업이 창출하는 높은 부가가치, 성장, 고용마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근조사를 낭독하고 있다.뉴스1

게임산업 장례 치루는 날업계 반발 거세

29일 한국게임학회, 한국게임산업협회 등 89개 단체들은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이들은 이날 “게임산업에 대한 장례를 치루는 날”이라며 상복을 입고 ‘게임’이라고 적힌 영정사진을 앞에 둔 채 출범식을 가졌다.

공동대책위원장을 맡은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이날 “젊은이들의 문화이자 미래산업,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게임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게임중독을 질병코드로 분류한 것은 게임 자체가 질병 유발물질이라는 인식을 근간에 깔고 있다. 이는 게임 생태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위기”라고 지적했다.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장은 “과거 게임을 마약이나 알콜 등과 함께 ‘중독’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삼아 강력한 입법에 나선 바 있다”면서 “과거의 사례를 비춰볼 때 이번 WHO의 의결을 계기로 강성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한 사회적 갈등도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 “현재 청소년 게임이용자는 약 480만명에 달한다. WHO 기준대로라면 이중 3% 가량이 게임중독자로 분류될 수 있다”면서 “WHO 질병코드를 적용하면 우리나라 청소년 중 14만여명이 정신질환 꼬리표를 달게 될 수도 있다. 게임이 질병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학부모들이 정작 자신의 자녀들에게 정신질환 진단이 내려지는 것을 수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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