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필의 세상 톡톡] 민주사회는 절차를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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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필의 세상 톡톡] 민주사회는 절차를 중시한다
  • 김성서
  • 승인 2018.06.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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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천안 신부공원에 임의로 설치된 임종국 선생 기념물. 흉상 받침대 뒤면에 '역사정의 실현이라는 선생의 높은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글과 함께 성금 낸 시민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1 서천 ‘평화의 소녀상’이 완성됐지만 한달 넘게 설치되지 못하고 있다. 서천군이 건립추진위원회가 원하는 장소 설치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진위는 통행이 잦은 광장 설치를 원하고, 서천군은 공유재산에 영구시설물을 임의로 세워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2 천안에선 지난달 13일 시 설치 보류 방침을 무시하고, 건립추진위가 친일문학 연구가 임종국선생의 기념물을 신부공원에 임의로 세웠다. 명백한 불법 설치였다. 제막식은 충남도교육감과 지역 국회의원, 시의원 등이 참석해 ‘합법적 설치’ 행사처럼 치러졌다.

서천에선 군 당국이 전국민이 공감하는 일본 제국주의 만행(위안부 할머니) 규탄의 성격이 짙은 평화의 소녀상도 허가하지 않고 있다. 추진위도 서천군 허락을 계속 요구할 뿐 설치를 강행하진 않고 있다. 그런데 천안에선 추진위가 “공공조형물 설치 관련 조례를 준비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시의 요청을 거부하고 자신들 일정대로 밀어부쳤다. 특정한 현대 인물의 기념물 설치에 대해 대다수 시민의 합의를 구하려는 노력도 부족했다.

임종국(1929∼89) 선생은 타계하기 9년 전, 서울서 천안에 내려와 집필에 몰두했고 천안공원묘원에 묻혔다. 여기선 임 선생 기념물의 천안 설치 적합성 여부는 논하진 않겠다. 시민 개개인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설치 방법은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기념물 건립에 동참해 성금을 낸 시민들이 시 허락 없는 기념물 임의 설치를 원했을까. 아마도 존경하는 인물의 기념물이 합법적 절차에 따라 세워지길 원했을 것이다.

공공성을 띤 조형물이라도 시유지인 공원에 마음대로 설치하는 건 시민으론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천안시는 지난달 29일 ‘행정절차 미이행으로 인한 원상복구 계고장’를 추진위로 발송했다.

한편 조만간 시의회는 의원 발의한 ‘천안시 공공조형물의 건립 및 관리 조례’를 통과시킬 예정이다. 조례안은 건립대상 조형물 선정기준을 정했다. 역사적 자료나 고증을 통해 객관적 평가가 정립된 인물이나 사실으로 제한했다. 구체적 기준은 첫째, 국난극복 및 국권수호 공헌도 둘째, 정치ㆍ경제ㆍ사회ㆍ예술ㆍ과학 등의 발전 기여도 셋째, 대상인물이나 사실에 대한 시민 공감도.

이제 이미 설치된 조형물에 대한 적합성 여부를 심의하는 기현상이 벌어질 태세다. 이 기념물은 심의를 통과하더라도 설치과정에서 보인 탈법성은 오점으로 남을 전망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지킬 건 지키는 게 민주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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