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독점’ 한국백신, 수익 늘리려 영유아 백신 공급 중단
상태바
‘시장 독점’ 한국백신, 수익 늘리려 영유아 백신 공급 중단
  • 김찬혁
  • 승인 2019.05.16 15: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배 비싼 ‘경피용’ 제품 판매 위해 필수접종 백신 공급 중단
독점 지위 이용 일방적 정부계약 파기로 국고 140억원 낭비
질병관리본부 1년간 파악 못해…공정위 시정명령·과징금 부과

1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사가 수입하는 고가의 경피용 결핵 백신 판매를 위해 국가 무료 필수 백신인 피내용 결핵 백신 공급을 중단한 ㈜한국백신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9억9000만원 부과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뉴스1

결핵 백신 공급기업이 자사의 고가 백신 제품을 많이 팔기 위해 국비로 접종이 지원되는 영·유아 백신의 공급을 중단한 사실이 드러났다.

1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사가 수입하는 고가의 경피용 결핵 백신(BCG) 판매를 위해 필수 접종 백신인 피내용 결핵 백신 공급을 중단한 ㈜한국백신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9억9000만원 부과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국백신 임원에 대해서는 검찰 고발조치도 이뤄진다.

BCG(Bacille Calmette-Guerin) 백신은 영·유아와 소아의 중증 결핵을 예방하는 백신이다. BCG 백신은 주사기형인 ‘피내용’ 백신, 도장을 찍듯 9개의 주사침을 놓는 ‘경피용’으로 나뉜다.

우리나라 결핵 백신 시장은 한국백신과 ㈜엑세스파마가 독점으로 수입해 판매하는 전형적인 복점(複占·Duopoly)시장이다. 그런데 엑세스파마가 덴마크 백신 공급업체 사정으로 2015년 9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수입·판매를 중단하면서 당시 한국백신은 국내에서 유일한 결핵 백신 공급자였다.

한국백신은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2016년 9월 정부와 협의 하에 공급하고 있던 일본 JBL사의 피내용 백신 주문을 의도적으로 감소시켰다. 당시 JBL사의 경피용 결핵 백신은 ‘비소 검출’과 관련해 안전성 논란이 일면서 판매량이 절반 수준으로 급감하고 있었다.  

이는 결핵 예방을 위해 국내 모든 영·유아 및 소아가 BCG 백신 접종을 받는 만큼 피내용 백신 물량을 줄이면 자사의 주력 판매제품인 경피용 제품을 정부가 쓸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초 질병관리본부는 엑세스파마의 피내용 백신 공급이 중단되자 주사기형인 일본·덴마크산 피내용 백신을 채택한 국가예방접종사업에 따라 한국백신으로부터 일본산 피내용 백신을 공급받기로 협의한 상태였다.

하지만 한국백신은 정부와 협의 없이 주문을 취소하고 2016년 10월 피내용 백신 주문량을 1만세트로 줄이고 2017년에는 아예 수입하지 않았다. 2016~2018년 사이에 발생한 BCG 백신 물량 부족 사태는 사실상 ㈜한국백신의 의도적 주문 물량 취소에서 비롯된 셈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 안내돼 있는 경피용 건조 BCG 안내. 당시 결핵 예방을 위해 1세 미만 영아에게 접종하는 일본산 도장형(경피용) BCG(일본균주) 백신에서 비소가 기준치보다 많이 검출돼 부모들이 불안을 호소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뉴스1

국내에 피내용 백신 공급량이 감소하자 질본은 경피용 백신을 한시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2017년 10월부터 2018년 1월까지 경피용 백신이 국가 지원 필수 접종에 임시로 사용되면서 한국백신의 경피용 백신 월평균 매출액은 63.2%까지 급증했다. 피내용 백신은 다인용이지만 경피용 백신은 1인용이기 때문에 가격도 10~18배 비싸다. 이처럼 고가의 경피용 백신이 국가 무료예방접종에 쓰이면서 추가 사용된 예산이 140억원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 조사결과 질본은 한국백신의 의도적인 주문 취소를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2017년 6월쯤 일본 후생성 출장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백신은 질본 측에 현지 회사 사정으로 피내용 백신 공급이 어렵다는 허위 사실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한국백신의 의도적인 주문 취소 행위를 시장지배적사업자의 부당한 출고조절행위로 판단하고 시정명령 및 과징금 9억90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또 한국백신 최덕호 대표이사 및 하성배 RA본부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공정위의 이번 처분은 독점 사업자의 출고조절행위에 가해진 20년 만의 제재이면서 백신 업종에 가해진 첫 번째 제재 사례다. 송상민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이번 건은 신생아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백신을 대상으로 한 독점 사업자의 출고조절행위를 최초로 제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