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섭의 교단직설] 대전 교육현장에서 사라진 ‘피해자 중심주의’
상태바
[신정섭의 교단직설] 대전 교육현장에서 사라진 ‘피해자 중심주의’
  • 김성서
  • 승인 2018.06.28 14: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교단직설(敎壇直說)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바르고 곧게 말함을 뜻합니다그릇된 것을 그르다 일컫고 옳은 것을 옳다 말하지 못한다면그에게서 배우는 아이들의 미래는 한없이 어두울 것입니다교육과 관련된 정책 등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바로잡기 위한 글이 연재될 것입니다필자인 신정섭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나불의를 참지 못해 공부보다는 운동을 더 열심히 했습니다이후 운동에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97년 호수돈여고 영어교사가 된 뒤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달라져야 밝은 미래가 있다는 사명감으로 98년에 전교조에 가입해 활동해오고 있으며 현재 전교조대전지부 대변인을 맡고 있습니다.

 

최근 대전에서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만큼이나 안타깝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대전A고 여고생 자살․실족사 논란, 대전B중 수업시간 집단음란행위, 대전C중 성폭행 피해 추정 여학생 투신자살 등이 그것이다. 왠지 진실이 가려진 채 적당히 덮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이 세 가지 사건은,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주의가 무시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피해자 중심주의’란 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과 주장을 우선시하고, 특히 권력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성폭력, 학교폭력 등에서 피해자의 진술과 관점을 중시하는 것이다. 누구나 피해자를 중심에 두고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막상 사건이 터지면, 이 ‘피해자 중심주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려난다. 위 세 가지 사건을 하나하나 톺아보자. 

첫째, 대전A고등학교 여고생 자살․실족사 논란! 

지난 6월 1일 모의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던 날 아침, 잠깐 흡연하러 옥상에 올라갔던 고3 여학생이 2층 난간으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학교와 교육청은 자살 쪽에 무게를 실었고, 유족은 “누군가 일부러 문을 잠갔다. 갇힌 아이가 1교시 국어시험에 늦지 않으려고 난간과 창문을 통해 복도로 진입하려다 사고가 났다”며 학교폭력에 의한 추락사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석 달가량 수사를 벌인 결과,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하지만, 지난 4월에도 학생이 같은 장소에 갇혔다 휴대전화를 통해 탈출한 적이 있다는 사실, 왕따 등 학교폭력에 연루된 여러 가지 정황 증거, 학교 측의 생활지도 및 안전관리 소홀 은폐 의혹 등 자살로 단정하기 어려운 반증이 계속 등장하면서 진실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학교와 교육청, 그리고 경찰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입장에 얼마나 가까이 오래 서 있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는, “고3 수험생이 시험 전에 옥상으로 담배를 피러 간다는 게 말이 돼?”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행실을 비난함으로써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둘째, 대전B중학교 여교사 수업시간 집단음란행위! 

지난 6월 하순, 대전B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영어 수업시간에 열 명 정도의 학생들이 집단 자위행위 또는 그와 유사한 음란행위를 했다. 학부모의 제보로 한 인터넷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이 충격적인 사건은, 대전시교육청이 “사춘기 학생들의 영웅 심리에 따른 장난”으로 결론 내리면서 일단락되었다. 가해 학생들은 ‘특별교육 5일’ 처분으로 끝났고, 교육청이 해당학교와 짜고 적당한 선에서 덮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사건 발생 며칠 후, 대전성폭력상담소에서 가해 학생들을 격리시킨 채 나머지 학생들을 면담 조사했다. 집단공연음란행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고, 실상은 언론에 보도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학교는 피해 여교사의 적극적이고 충분한 진술권을 보장하지 않았고―외려 “피해 여교사가 수업시간에는 아이들의 이상한 행동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학생들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학교가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한다며 의혹을 제기하자 ‘징계’ 운운하며 막았다. 일각에서는 가해 학생들 부모 및 학교운영위원장의 권력으로 피해자 중심주의를 질식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대전C중 성폭행 피해 추정 여학생 투신자살! 

지난 달 25일 송촌동 학원 건물 옥상에서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투신해 자살했다. 아이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겼고, 유족은 “아이가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 같은 반 학생이 동영상까지 찍었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지난 5일 중간 수사결과를 일부 공개하여 “목숨을 끊은 아이는 일방적 성폭행 피해자가 아니며, 동영상을 촬영했다고 알려진 학생은 피해자”라고 말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20대 남성은 ‘성폭행’이 아닌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 8일 구속되었다. 경찰은 “유족의 주장과는 달리, 동영상 파일 등 폭력을 사용한 성범죄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수사 결과를 신뢰하든 안하든, 이번 사건에서도 피해자 중심주의는 사라져버리고 없다. 유감스럽게도,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 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살한 피해 학생의 행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가 하면,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애초에 ‘가해 공범’인 것처럼 언론이 보도했던 같은 반 학생이 받은 씻을 수 없는 상처에 대해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다. 

지금 대전광역시교육청 정문 근처에는 ‘대전성폭력피해청소녀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많은 시민들이 추모 헌화를 하고, 포스트잇에 추모 글을 남기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살한 아이는 젠더 폭력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사실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쏟아진 온갖 비난과 질책, 불편한 시선,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가정과 학교, 교육청, 경찰 등 우리 사회 그 어느 누구도 열여섯 살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성폭력이나 학교폭력 사건이 벌어졌을 때 결코 ‘피해자 중심주의’를 잃어버려선 안 된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신문 지면을 통해서도 피해자 중심주의는 정말 지겹도록 가르쳐져야 한다.

2017.09.1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