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의 시절잡설] 과학자의 도덕성, 교수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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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의 시절잡설] 과학자의 도덕성, 교수의 양심
  • 김성서
  • 승인 2018.06.2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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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의 정책간담회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황우석 사태에 대한 입장 표명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2017.8.10/뉴스1

[편집자주] 박현 시인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소박한 대답을 세상을 ‘흘겨보면서’ 나누고자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윤동주, 「서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을 꼽으라면 단연 윤동주 시인일 것이다. 시를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윤동주라는 이름 석 자와 그의 대표시인 「서시」 한 두 구절을 읊조리지 못하는 한국인은 없으리라. 물론 윤동주 시인이 이렇게 사랑받게 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요즘말로 꽃미남이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외모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요절한 그의 생애가 환기하는 연민도 그 한 이유가 될 것이다. 텍스트 내적으로 본다면 어렵지 않은 시어를 담담히 구사하여 촌부조차도 알아들을 수 있게 노래한 그의 소박하고 겸손한 시작법에도 그 까닭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시」는 2연 9행의 짧은 시이다. 이 시가 참으로 무겁고 아프고 두려운 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내가 마흔이 넘어설 무렵이었다. 그전까지는 그저 시론 책에 실려 있어서 학생들에게 시의 원리를 가르치는 모범적 사례로만 읽고 이해했던 터였다. 그런데 마흔을 넘어설 무렵 어둠 속의 내가 빛 속의 나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살고 있느냐?

시가 노래하는 정의(正義)가 있다. 그런 시를 가르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가 노래하는 정의(正義) 안에서 “정의의 투사”로 잘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사실은 쓰레기로 불릴 만큼 추악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이 다 그러하지 않을까? 제 그림자가 진흙탕에 빠진 줄을 모를뿐더러, 그 꼴을 보고도 ‘나는 연꽃이 되어 더러운 흙탕물을 깨끗하게 할 것이야’ 하는 헛소리나 툭툭 내뱉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부가 순천대 박기영 교수를 차관급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하였다. 과학계는 발칵 난리가 났다. 황우석 사태의 주범이었던 그녀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금의환향하였으니 과학계의 반발을 그저 감정적인 것이라 치부할 수도 없다. 그녀를 임명하는 것과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가 다른 것이 무엇인가. 명색이 학자가, 그것도 과학자라는 자가 논문 조작의 한 가운데에서 온갖 영화를 누렸으면서 그 어떤 반성도 없다가 때가 달라지자 슬그머니 나타나 한국 과학을 책임지겠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논란의 당사자가 부디 하늘을 우러러 보기를 바란다. 탐욕의 돼지가 아니라면 고개를 들 수 있으리라. 부디 하늘이 말하는 소리와 인간으로서, 학자로서, 과학자로서 지닌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기자회견장에서 추하게 눈물을 흘리며, “구국의 심정” 따위의 흰소리를 할양이면 “구국의 심정”으로 제 잘못을 냉철하게 반성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다. 진심으로 문재인 정부의 성공, 적폐 없는 대한민국의 건설에 이바지하고 싶다면 누가 적폐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2018.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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