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의 시절잡설]아직도 살아있는 이중생의 처단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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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의 시절잡설]아직도 살아있는 이중생의 처단을 고대하며
  • 김성서
  • 승인 2018.06.2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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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방송 화면캡처.(참고용)

[편집자주] 박현 시인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소박한 대답을 세상을 ‘흘겨보면서’ 나누고자 한다.

이중생(李重生)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악질적 친일파로 일제강점기에 제 아들을 솔선해서 징용군에 보내면서까지 치부한 인물이다. 광복 직후에는 사회의 혼란기를 틈타 국유림을 사유화하기 위해서 무허가 산림회사를 차리는가 하면, 작은딸을 미국인의 정부로 이용하는 등 온갖 비행을 저지른다. 이렇게 거부가 된 이중생은 사기와 배임횡령, 공문서 위조 및 탈세범으로 입건된다. 

그런데 그는 참회하기는커녕 잠시 석방된 틈을 타서 법률 고문의 기지에 힘입어 재산 몰수를 방지하기 위한 가사(假死) 흉계를 꾸민다. 그러나 사위에게 넘겨놓은 재산이 꼼짝없이 사회사업에 쓰이게 됨으로써 사실상 몰수당한 셈이 되고 만다. 진퇴양난에 빠진 이중생은 진짜로 자살하고 만다. 이 작품은 주인공 이중생의 행태를 통해 광복 직후의 격동기를 리얼하게 비판하고 있다. 광복 후까지 조금도 회개하지 않고 떳떳이 행세하던 반민족적 친일파의 행태를 예리하게 파헤침으로써 친일파 잔당들의 폐부를 찌를 만한 사회풍자극이다(오영진,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참조). 

연극에서 이중생은 죽는다. 악의 축, 적폐가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드라마일 뿐이다. 드라마야 어차피 인간에게 이루어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환상밖에 제공할 수 없는 노릇이니 탓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어디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한가. 

우리에게 적폐를 청산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바로 반민특위의 결성이었다. 제헌국회는 정부 수립을 앞두고 애국선열의 넋을 위로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잡기 위해 친일파를 처벌할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헌법에 두었다. 이에 따라 제헌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1948년 9월 22일에 공포되었으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같은 해 10월 22일에 설치되었다. 

반민특위는 그 설치 목적에 따라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승만과 친일 세력의 조직적이고 노골적인 방해로 반민특위 활동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오히려 친일 세력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나아가 이들이 한국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였다. 이 때문에 사회 정의가 무너져 사람들의 가치관이 혼란에 빠졌으며, 사회에 이기주의와 부정부패 등이 횡행하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친일파를 발본색원하지 못한 결과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친일파 후손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세대를 거치며 더러운 성분을 세탁한 그들은 우리 사회의 학계, 경제계, 정치계, 문화·예술계 등에서 여전히 막강한 권세를 누리며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그들의 힘이 커질수록 그들의 대척점에 서 있던 진짜 애국자는 굶어 죽었고, 지금도 굶어 죽어가고 있다. 

부디 새 정부가 반민특위를 반대하고 방해했던 이승만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새 정부의 정체성은 바로 적폐청산의 약속에서 나온다.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이 적폐이다. 지금 이 적폐의 근본은 상식을 가진 모든 이가 다 알다시피 친일파의 후손들이다.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아비와 그 아비의 아비에 더러운 뿌리를 대고 있는 잔당들이 바로 적폐의 근원이다. 그런데 이 적폐들이 후안무치하게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혜안을 부릅떠 누가 적폐인지를 확실하게 찾아내어 거침없이 그 적폐를 청산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사회 곳곳에 박혀 위세를 부리며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이중생’을 발본색원하기를 국민들은 간절히 원하고 있다.

201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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