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의 시절잡설] 지식인의 양심과 도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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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의 시절잡설] 지식인의 양심과 도덕성
  • 김성서
  • 승인 2018.06.2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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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서울대병원 의료윤리위원회 위원장(진료부원장)이 1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수정 관련 브리핑을 마친 후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2017.6.15

[편집자주] 박현 시인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소박한 대답을 세상을 ‘흘겨보면서’ 나누고자 한다.

지조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지훈 선생의 명문인 『지조론(志操論)』의 한 부분이다. 지조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조지훈 선생은 그 고통을 “투쟁”이라고까지 단언하고 있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라는 선생의 말은 선비에게만 지조가 필요한 것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특별히 선비, 오늘날로 말하면 지식인에게 지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 혹은 지식인이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강조한 말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지식인들이 얼마나 지조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맞닥뜨리면 자랑스러움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선다. 이미 논문 표절 문제로 물의를 빚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모 교수가 또다시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는 보도를 듣고 교수는 더 이상 선비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선비가 아닌 그에게서 지조를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니 반대로 그에게서 부끄러움과 반성을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서울대병원이 백남기 농민 사망 262일 만에 진단서에 적힌 사망 원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바꾸며 기존 입장을 번복해 눈총을 샀다. 서울대병원은 백씨의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사망의 종류를 ‘외인사’로 수정하는 한편 외인사의 직접적인 원인도 경찰의 ‘물대포’라고 결론을 냈다. 서울대병원은 사망진단서 논란이 불거졌던 지난해 9월 이후 진단서에 관한 권한이 주치의 백선하 교수에게 있기 때문에 작성자가 전공의라 하더라도 정정을 요구할 수 없다고 설명해왔다. 또 유족과 시민사회, 의료계 전반에서 진단서 작성에 관한 비판 목소리는 물론 관련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정정 불가’ 방침을 고수했다. 그러다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급작스럽게 자신들의 입장을 번복하였는데 적폐청산을 주창하는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장관 후보자인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과거에 한 “몰래 혼인신고” 등 각종 의혹들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위조 혼인신고에 대해 “실로 어처구니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며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그 일은 전적인 저의 잘못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행위”라고 사과했다.

안 후보자는 아들의 퇴학 무마 의혹에 대해서 “절차에 개입하거나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적은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2014년 서울의 한 사립고를 다녔던 안 후보자의 아들은 여학생을 기숙사에 부르고 이를 친구들에게 자랑했다가 퇴학처분을 당하게 됐다. 안 후보자는 당시 학교 임원이었던 부인을 통해 학교 측에 탄원서를 보냈고 안 후보자의 아들은 퇴학 대신 특별 교육을 2주간 이수하는 조건으로 징계 처분이 사실상 철회됐다.

안 후보자는 일련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하여 “저는 즉시 깨닫고 후회했으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스스로를 치료하면서 제 생애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그 후로 저는 오늘까지 그 때의 그릇된 행동을 후회하고 반성하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과와 해명을 하면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에게 주어진 마지막 소명으로 생각하고 국민의 여망인 검찰 개혁과 법무부 탈검사화를 반드시 이루겠다”며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지식인들의 미끄러운 혓바닥이 만들어낸 추잡한 변명이 모처럼 돌아온 국민들의 웃음을 앗아갈까 걱정스럽다.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과오를 인정하고 고개를 숙인 서울대병원의 지식인들이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학문하는 지식인에게 표절은 치명적인 범죄이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면 외부의 힘을 빌어서라도 그 잘못됨을 인지시키고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여야 한다.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마땅히 자신의 과오를 부끄럽게 여기고 물러나야 한다. 그것이 혹시라도 남아 있을 실낱같은 지조를 지키는 길이다.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권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困辱)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정신의 자존(自尊)·자시(自恃)를 위해서는 자학(自虐)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조의 매운 향기를 지닌 분들은 심한 고집과 기벽(奇癖)까지도 지녔던 것이다.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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