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률의 다른생각] 비정년 교원의 쓸쓸한 죽음이 던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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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률의 다른생각] 비정년 교원의 쓸쓸한 죽음이 던진 메시지
  • 김성서
  • 승인 2018.06.28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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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기억해주세요”

죽어서도 따라붙는 신분

인도인들은 죽으면 화장을 한다. 그 화장을 갠지스 강가에서 하고, 남은 유해를 강물에 흘려보내는 것을 최고의 성스러운 복으로 여긴다.

갠지스 강에서 화장이 되는 망자들은 행복(정확히는 유족이다)하다 할 터인데, 그 행복이 다 같지가 않다. 어떤 망자는 충분히 탄 유해가 강물에 들어가지만, 어떤 망자는 살이 덜 탄 채로 유해가 강물에 들어간다. 흐르지 않고 가라앉는다.

이유는 돈이다. 부자는 뼈까지 바짝 태워 부술 수 있는 양의 장작을 살 수 있으나, 빈자는 장작이 모자라 시늉만 한다. 죽어서도 빈부, 신분, 계급의 차이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며칠 전 대전의 한 대학에서 한 비정년교원의 장례가 있었다. 질환으로 급작스레 유명을 달리 한 것인데, 빈소도 허전했지만, 노제도 보기에 쓸쓸했다. 새삼 갠지스 강의 화장이 떠오른 이유이다.

우리나라 노동인구 구성을 보면, 정규직 30, 비정규직 40, 자영업 30퍼센트쯤이다. 정규직이라고 해도 삼성과 현대의 임금이 높고, 그 밑의 100대 기업은 이들보다 낮다. 또 그 밑은 100대 기업 임금의 70퍼센트 가량 받는다. 자영업의 월평균 소득이 100만 원 안팎이라고 한다. 그러나 돈 놓고 돈 먹는 은행원들의 평균임금은 삼성과 현대를 뺨친다.

 나와 너는 다르다

자유시장경제의 제일 원칙은 공정한 경쟁이다. 누구나 차별 없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노동의 질과 양이 같은데, 심지어는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이면 임금뿐만 아니라 신분 보장과 처우에 있어서도 큰 차별을 받는다.

대입을 준비하기 위해 개고생하는 고3처럼, 입대하여 빡빡 기는 신병처럼 비정년은 정년이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불사른다. 그러나 몸만 불사르고 끝나는 비정년이 대다수이다.

 정의와 진실을 말하고, 공정한 경쟁을 말하고, 부당한 차별을 없애자고 주장해야 마땅한 곳이 대학이다. 그런데 대학이 그렇지 못하다. 위로는 돈줄이 되는 교육부를 잘 모시고, 아래로는 정년, 비정년, 직원, 행정조교 순으로 돌린다.

아니라고 해도 이렇게 돌아간다. 실업 및 고용문제도 교육부의 지시(정책)라면 끽소리 못한다. 심지어 대학이 취업을 책임져야 하고, 그 취업률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는 데도 남의 집 불구경이다.

대학이 취업기관인가? 그런데도 대학이 취업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교수들이 자진해서 난리다. 일자리가 있어야 취업을 하는 것이지, 대학이 일자리를 만든단 말인가. 이게 현실적으로 한계에 이르니까 대학이 창업을 담당해야 한다고 난리다.

기가 막힌다. 월평균 100만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는(프랜차이즈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래서 10개 중 2개가 겨우 살아남는다는 그 창업을 하라는 것이다.

신분은 양과 질에 우선한다

문재인 정권은 공공기관에 일자리 창출방안을 내라고 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릴 방안을 찾으라고 한다. 이것으로 공공기관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대학이 아니라…. 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온당한 일이 이제야 겨우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기득권이 무섭다. 한 번 차고앉으면, 그걸 지키고 향유하기 위해 밑으로는 사그리 밟아버린다. 논리는 간단하다.

누가 비정규직하래? 누가 자영업하래? 그러게 열심히들 살지 그랬어. 정말 그렇다면 열심히 살지 않아 비정규직과 자영업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해보라. 재벌 3세들은 열심히 해서 삼성·현대·한화·LG 등등을 물려받나?

오찬호가 쓴 『진격의 대학교』에 이런 글이 있다. “2010년에 임용된 교수 중 36퍼센트였던 비정년 교수 비율이 2013년 51퍼센트로 급상승했다. 전체 교수 중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9.1퍼센트에서 2013년에는 14.7퍼센트로 증가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국내파 교수 증가 통계와 어떻게 연관될까? 비정년 교수는 정년 교수 대비 49퍼센트에 불과한 연봉을 받는 ‘무늬만 교수’다.”

비정년교원은 결코 가난하다고 볼 수 없는 대표 사학인 연세대가 2003년 처음 시작했다. 2011년에 46퍼센트 수준이었던 것이 2015년 신규로 임용한 전임교원의 60퍼센트 가까이가 비정년교원이다. 이들의 임금 수준은 여전히 정년교원에 비해 40-60퍼센트 수준이다.

 자본주의사회라서 그런가. 비정년교원의 인격, 인권도 정년교원의 40-60퍼센트만 인정받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상업화되었다고는 하나, 진리와 정의를 탐구하고 실천한다는 대학이 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나 싶다.

죽음 앞에 장작 값을 따지는 것이나, 무관심한 것이나 다를 바 없지 않나. 망자의 유족이 조문하고 나올 때 말했다.

“학교가 망자의 삶을 기억해주셨으면 고맙겠어요.”

그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쓸쓸한 죽음인 것만큼은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2017.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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