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희창의 파사현정] 절차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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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창의 파사현정] 절차의 중요성
  • 김성서
  • 승인 2018.06.2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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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破邪顯正은 삿된 견해를 논파하여 올바름을 드러낸다는 용어입니다. 언론의 역할을 이만큼 적확하게 표현한 용어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언론과 관련해 그릇된 견해들을 끄집어내어 바로 세워보려는 글들이 연재될 것입니다. 필자인 우희창 박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 기자로 사회 첫발을 내딛었고 대전충남민언련 사무국장, 충청남도 미디어센터장을 거쳐 현재 대전충남민언련 공동대표,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범죄기자 출입기자 제한조치

절차의 무시와 생략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

휴일이 되면 집에서 가끔 요리를 한다. 요즘 세상에서는 인터넷에서 모든 것을 다 알려주니 요리하는 것이 그렇게나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제시된 레시피(recipe)에 따라 하라는 대로 하면 큰 문제가 없다. 맛도 그럴싸하게 나오니 가족들로부터도 칭찬을 받곤 한다. 문제는 급하다고, 혹은 귀찮다고 해서 절차를 생략하거나 대충 건너뛰게 되는 경우 생긴다. 모든 재료를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 것이다.

절차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민주주의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가 절차와 과정의 정당성이다. 아무리 긴박한 상황이라 해도 경찰은 범인을 체포할 때 ‘미란다 원칙’을 반드시 고지해야 한다. 천인공노할 흉악범이라 하더라도 절차에 따르지 않고 임의로 벌을 줄 수는 없다. 선의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절차가 정당치 않으면 안된다는 뜻으로 구축해 놓은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이다.

설령 법과 제도로 어떤 절차를 규정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회 상규상 지켜야 하는 절차도 많다. 절차가 생략되었다고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한 정당성 결여가 지적된다면 이는 문제다. 최근 대전시와 시의회, 교육청, 경찰청 등 대전지역 4개 공공기관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언론인 및 언론기관에 대해 출입제한, 광고지원 중단이 포함된 출입기자 제한조치를 내린 것이 바로 그러한 예다.

이 제한 조치를 구체적으로 보면 대전지역 공공기관을 출입하는 기자가 언론직무 관련 범죄를 저지르거나 중대범죄로 범죄를 저지를 경우 보도자료와 취재편의를 제공하지 않으며 해당 언론사에 대해서는 광고나 신문 구독 등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세종지역에서 발생한 출입기자들의 비위 행위에 대해 세종시가 출입기자 제한 조치를 취한 데 이어 충남도, 대전시가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면서 도입하게 됐다고 한다. 언론의 적폐를 해소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 목적의 선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치를 취하기까지 어떠한 공론의 과정도 없었다. 이른바 절차가 생략되었다는 것인데, 정책 자체의 정당성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번 조치는 ‘국민의 알권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자칫 언론 길들이기를 하거나 혹은 언론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제한 조치의 주체가 되는 공공기관과 제한조치의 대상이 될 언론사, 그리고 ‘알권리’를 갖고 있는 시민들 모두가 관련되어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도 도입과정에서 충분한 사회적 공론 과정을 거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수백만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도 결국 정당한 절차를 통하지 않고 국민이 국가에 위임한 권한을 맘대로 휘둘렀기 때문 아닌가? 정책과 예산의 수립 및 집행, 국가 주요 직책에 대한 인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기업과 대학 등 민간 부문에서 조차 정당한 절차가 무시되었다. 하다못해 청와대 출입조차 절차가 생략되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은 “좌파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절차의 정당성을 무시하고 무슨 짓을 하더라도 괜찮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가져온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절차에 대한 무시와 생략은 그간 쌓아온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성경을 읽기 위해 양초를 훔치지 말라”는 서양의 격언이 있다. 선한 뜻이든, 선한 결과든 간에 절차가 무시되면 그 자체 모두가 정당하지 않게 된다. 절차를 생략한 요리가 맛이 없게 되듯, 이번에 내려진 대전시 등 공공기관 출입기자 제한 조치는 여러 곳에서 허점이 드러난다. 권언유착의 핵심인 폐쇄적인 출입기자단 문제나 언론홍보비 문제 등 관행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개인 기자의 일탈을 처벌하는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미봉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모두 사회적 합의나 공론이라는 절차를 무시하고 기관 중심으로 서둘러 제도를 마련한 때문이다.

절차란 일종의 규제이다. 따라서 그 절차가 합리적이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 규제는 일정한 불편함을 불러오고 그 불편함은 바람직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감수비용이다. 물론 합당한 이유 없이 오랜 기간 불합리한 절차가 계속되어 왔다면 마땅히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사회적 합의나 제도의 개선, 혹은 법의 개정에 의해 가능한 것이지 일방적으로 무시하거나 생략함으로써 달성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이번 조치를 취한 공공기관들은 잘못된 언론관행을 바로잡을 후속 대안마련에 나서야 한다. 지역의 언론계와 학계, 시민사회 등과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인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다소 더디게 가더라도 공론화 과정을 거쳐 더욱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립할 때만이 정책의 정당성이 담보되고 그 효과도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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