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률의 다른생각] 삼성 이재용 아버지의 요망한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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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률의 다른생각] 삼성 이재용 아버지의 요망한 충고
  • 김성서
  • 승인 2018.06.2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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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고광률은 소설가이자 문학박사이다. 1990년 엔솔로지(『아버지의 나라』 실천문학)에 「통증」으로 등단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뿔』(은행나무) 등을 발표하였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서울에서 잡지사 정치 관련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를 지냈고, 대중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문예창작 및 미디어 관련 출강을 하고 있다.

“아니 삼성을 왜 자꾸 건드리고 지랄들이야. 저런 놈들 때문에 나라 경제가 어려움에 빠진다니까…….”

2005년이던가, 추운 겨울 심야였다. 음주 때문에 차를 놓고 택시를 탔는데, 택시가 어느 경찰서 앞을 막 지날 때, 피켓 시위를 하는 젊은이 네댓을 본 기사가 이를 갈며 내뱉은 말이었다. 마치 더러운 가래침을 긁어 뱉는 것 같기도 했다.

“저런 빨갱이 새끼들이 없어져야 나라가 바로 선다니까…….”

승객의 반응이 밍밍하다고 생각했는지. 기사가 더욱 강한 후속타를 날렸다.

“기사 아저씨. 부자세요?”

그냥 견디며 가려던 생각이 바뀌어 던진 질문이었다.

“예? 이 양반. 부자면, 미쳤다고 택시를 끌어요?”

택시를 끄는 게 어떠냐고 물으려다, 본질을 벗어나는 것 같아 하려던 질문을 계속했다.

“그럼 숨겨둔 ‘빽’이나 빵빵한 권력이라도 있으신가 봐요?”

“…….”

뒤늦게 ‘불순한’ 질문 의도를 눈치 챈 기사가 답이 없었다. 승객과 한판 붙을 수도 없다는 직업의식도 끼어든 것 같았다.

그 틈에 나는 연타를 날렸다.

“명절에 떡값으로 보통 얼마를 쓰세요?”

“그야 뭐…… 마누라가 알아서 쓰니까…… 나는…… 모르지요.”

“이건희가 떡값으로 뿌린 돈이 수 백 억을 넘는답니다. 그게 떡값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삼성을 구속하라는 것이 아니라, 뇌물을 떡값이라며 개인당 수 백, 수 천 만원씩 건넨 이건희를 구속하라는 겁니다. 삼성이 몽땅 이건희 것은 아니에요. 가족친지들 것 다 합쳐 15퍼센트쯤 되려나. 이걸 이건희 씨가 잘 알아요. 그런데 기사님 같은 분들이 삼성을 이건희 것이라고 인정하시는 거지요. 그리고 삼성이 돈 벌어서 국민들에게 나눠주나요. 고용시장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퍼센트도 안 됩니다.”

그날 나는 뜸들이고 있는 기사에게 끝끝내 잔돈 200원을 받아 챙겼다. 평소에는 그렇게까지 안 하던 행위였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재직시절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많이 했다. 솔직함이 병인 때문이었다. 세상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뉜다. 피지배자가 지배자의 부당한 이익과 부정을 애써 두둔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대충 이런 취지의 발언이 있었다. 미국인보다 미국의 국익을 더 챙겨주려는 한국인이 있다, 라는 발언과 함께 ‘피지배자 코스프레 같은’ 있는 발언이었다. 물론 계급주의적 발언이라고 난리가 났었다. 어쨌든 ‘지배자의 대장’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의외였다. 아마도 지배자이면서 피지배자의 편에 섰기 때문이었으리라. 아니 진정한 지도자(지배자)가 되고자 노력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배자가 그 가진 권력을 가지고 최상의 지배이데올로기를 만들어 피지배자를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지배하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피지배자가 저들의 이해와 무관하게 또는 정의나 공익과 무관하게 지배이데올로기를 따르고 고무·찬양하는 것은 어찌 된 노릇일까. 더욱 기막힌 것은 복종·고무·찬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지배이데올로기에 불만과 이의를 제기하는 같은 위치의 피지배자들을 욕하고 따돌린다는 것이다.

가진 게 없는 놈이 가진 자들에게 시기 질투를 하고 발목을 잡는다고 몰아치는 것이다. 이걸 지배자가 그러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입장의 피지배자가 그런다는 것이다.

피에르 브루디외가 말했다. 현대 자본주의를 이끌어 가는 핵심가치는 돈·권력·지식이라고. 우리나라의 경우, 지식을 학벌로 바꾸면 된다.

돈과 권력을 쥐고 학벌이 좋은 사람이 그 자체만으로 정의요, 선이 되는 것이다. 가진 것 속에서 깨끗하고 자족하며 살래, 뇌물 먹고 때깔 나게 살다 감방 갈래, 라고 물으면, 뇌물 먹고 감방 갔다 와서 그 돈으로 다시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고 한다. 대학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상담과 면접 중에 겪은 경험담이다.

이런 의식의 토양 속에서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박근혜가 나오고, 악귀 역을 자처하는 김기춘이 나오고, 법을 욕망의 도구로 삼는 우병우가 나오고, 뒤통수를 치고도 시치미를 떼는 조윤선이 나오며…… 이 튼튼한 반석 위에서 최순실·정윤회가 등장하는 것이다. 최순실이 없으면, 저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있기에 최순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들은 우리 국민들 의식의 빈틈과 그늘에서 잉태된 것이다. 우리가 저들을 뽑아 나라를 통째로 맡겼고, 인정해 온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끝까지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상식과 인간의 도리마저 버리고 법의 프레임 속에 숨어서 최후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법이, 가진 자의 것이었기에, 가진 자의 편에서 해석되어지고 이용되어졌기에, 불법을 저지른 저들이 법을 방패삼아 법의 울타리 안으로 숨어들어 농성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이 모든 패악스러운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공익보다는 사익을, 정의보다는 이익과 권력을 좇으며 무조건 신봉해 온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어 있는 것이라면, 지배자의 지배이데올로기와 피지배자의 저항이데올로기가 균형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올바른 세상을 꾸려 나갈 수 있는 것이리라.

내 것을 빼앗기면서도, 심지어는 내 것을 갖다가 바치면서까지 가진 자들에게 충성을 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잘 되면 나도 잘 될 수 있다는, 이른바 낙수효과에 대한 믿음인가.

삼성이 우리나라 고용에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인가. 또 삼성에 입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들은 얼마인가. 그런데도 삼성이 우리나라를 벌어 먹인다고 생각하는가. 삼성은 이런 생각에 빌붙어 이번에도 최순실에게 박근혜에게 그 많은 돈을 쏟아 부은 것이다. 이명박에 의해 떡값의 죄를 사면 받은 이건희 씨가 사면 기념 발언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일갈했다. 범법자가 선량한 국민들에게 되레 충고를 하는 이상한 나라…… 정의가 바로서지 않았을 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최순실 또한 ‘노랑머리 한국인’ 중 하나이다. 받은 뇌물은 모두 독일 등 외국으로 빼돌렸다. 국부가 부정한 방식으로 유출되어 남의 나라로 넘어간 것이다.

그 나라의 정치 수준과 지배층의 윤리 기준은 그 나라의 국민이 만드는 것이다. 결코 국민의 의식 수준 아래나 위에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작금의 상황에서 진실과 정의를 찾는 것은 정치인의 힘도, 언론의 힘도, 검찰의 힘도, 특검의 힘도, 헌재의 힘도 아닌 오직 ‘촛불 민심’으로 대변되고 있는 깨어있는 국민의 힘이다.

깨어 있는 국민의 힘은 가진 자의 입장에서 가진 자의 편에서 순응과 복종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각자가 ‘지금-여기’ 자신이 처한 입장과 위치에서 즉, 내가 속한 곳에서 공정하게 사고하고 판단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세상을 재는 잣대가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것이다. 지배자가 가지고 있는 잣대와 피지배자가 가지고 있는 잣대. 내가 피지배자인데, 앞서 말한 택시기사처럼 지배자의 잣대를 쥐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조만간 제2의 박근혜-최순실을 탄생시켜 키워 줄 것이다. 그리고 재벌 삼세 이재용으로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그의 아버지 이건희 씨가 내뱉은 요망한 충고를 다시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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