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학고 졸업생 대거 의대행…‘과학 인재 양성’ 취지 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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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학고 졸업생 대거 의대행…‘과학 인재 양성’ 취지 무색
  • 김성서
  • 승인 2019.02.1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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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졸업생 130명 중 31명 의대 진출…5년 새 최대
‘이공계 인재 양성 취지 벗어나’vs‘의학도 과학’
'우수 이공계 인력 양성'이라는 목적을 갖고 설립된 서울과학고등학교의 올해 졸업생 4명 중 1명이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나 설립 취지와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뉴스1

올해 서울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 4명 가운데 1명이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나 ‘우수 이공계 인력 양성’이라는 설립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서울시교육청과 서울과학고 등에 따르면 2019년 2월 기준으로 서울과학고 졸업생 130명 가운데 31명(23.8%)이 의대에 진학했다. 이 학교는 총 8학급 16명 내외로 구성돼 있는데, 이를 감안하면 1학급당 4명씩 의대에 간 셈이다.

서울과학고 졸업생의 의대 진학 비율은 최근 5년 중 올해가 가장 높다. 이 학교에서는 2015학년도부터 졸업생의 18~20%가 의대를 갔는데, 올해 그 비율이 최대 6%P 가까이 더 올라간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서울과학고 측은 의학전문대학원을 운영하던 대학들이 올해부터 학부체제로 전환, 의대 모집 정원이 크게 증가해 의대를 선택한 학생이 다소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학교 측도 그동안 학생들의 의대 유출을 막기 위해 노력을 했음에도 예년보다 그 비중이 늘어 당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과학고뿐 아니라 영재고 졸업생의 의대 러시는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8학년도 기준 경기과학고 졸업생의 5.6%, 대전과학고 졸업생의 5.3%가 의대행을 택했다. 올해도 이와 비슷한 비율로 졸업생들이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고에서도 이런 현상은 나타나는데, 특히 서울지역 과학고에서 두드러진다. 지난해 기준 세종과학고 졸업생의 약 10%, 한성과학고 졸업생의 4.1%가 의대에 갔다.

서울과학고 홈페이지 캡쳐

영재고는 우수 이공계 인재 발굴과 교육을 목표로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설립된 고등학교다. 모든 고교 유형 중 가장 먼저 신입생을 뽑는데다 선발규모(8개교, 총 790명 내외)도 작아 전국 최상위권 학생들이 몰린다. 과학고도 영재고와 설립 취지가 크게 다르지 않고 학교 명칭도 비슷하지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설립돼 학교 유형 자체는 다르다.

이런 영재고·과학고에서 학생들의 의대행을 두고 설립 취지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영재고·과학고는 우리나라 이공계 인재 양성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그에 맞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이 학교를 통해 의대에 진학하는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문제”라며 “이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국비 지원이나 학생 우선선발 등 특혜를 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자율형사립고도 설립 취지와 다르게 입시명문고로 변질됐다는 이유로 일반고 전환이 추진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영재고 등에 대해서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과학적 역량이 뛰어난데도 학업 능력이 다소 떨어져 영재고·과학고 진학의 꿈을 이루지 못한 학생들도 많았을 것이다. 영재고·과학고 출신 상당수의 의대행으로 이런 학생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영재고·과학고 학생들의 의대 진학 제재 방안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교육당국 권고로 이들 학교 학칙에는 ‘의학계열 진학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의대 지원시 학교장 추천서 미제공, 의대 진학시 장학금·지원금 회수 등에 나서고 있다.

교육계 관계자는 “이미 상당수 의대가 학교장 추천서를 받지 않는데다 등록금이 비싼 의대에 진학할 정도의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이나 지원금 부담도 없을 것”이라며 “좀 더 확실한 제재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반론도 나온다. 또 다른 교육계 관계자는 “의사도 넓게 보면 인체나 생명과 관련된 과학적 연구를 하는 직업이다. 집도를 하지 않고 연구만 하는 의사도 있는 만큼 과학인재 양성이라는 취지에서 벗어난다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라며 “학생들의 진로를 제약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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