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30 스페인 마드리드1, 소귀나무와 곰 발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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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30 스페인 마드리드1, 소귀나무와 곰 발바닥
  • 류호진
  • 승인 2021.03.2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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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이상용 원장은 대전대학교한방병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대전 유성에 '용한의원'을 개원, 운영하고 있다.

나의 여행기 30 (2018. 5.26.~5.30.)

마드리드 Madrid 1

토요일의 마드리드 아토차 역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행객이 가득하다.

10개 이상의 중첩된 플랫폼 사이 사이에 정차 중인 고속열차의 행렬을 보니 이전 여행지에서 보지 못한 웅장한 스케일에 스페인의 정치 문화의 중심 도시에 들어온 것이 실감 난다.

공항 같은 느낌의 번잡한 역사를 빠져나오는데 긴장감인지 자연스런 현상 때문인지 모르는 생리현상이 발생한다. 동전을 투입해야 입장할 수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우리나라 공공 화장실은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해도 된다.

스페인 뿐 아니라 여타의 다른 나라 여행 중에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화장실의 청결도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넉넉한 인심까지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화장실에서 느낀 애국심을 품고서 호스텔을 찾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을 찾는다. 정류장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버스 노선에 따라 타는 곳이 다르다.

잠시 어리둥절한 상태가 되어 여행 가이드 북 안내에 따라 버스 노선을 찾아서 승차에 성공한다. 몇 정거장만 가면 내리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구글 지도를 살피니 목적지와 자꾸만 멀어지고 있다. 아차차!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반대편 정류장으로 건널까 하는 갈등이 생겼지만 급할 것도 없는데 시내 지리도 읽힐 겸 종점까지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버스에 눌러앉는다.

그러나 기대한 시내 풍경은 잠시 뿐, 점차 시내와 멀어지더니 건물보다 숲과 나무 밀도가 더 높은 시 외곽을 순회하더니 허름한 종점에 도착한다. 나를 태운 버스와 먼저 와서 출발을 대기 중인 버스 한 대, 그리고 버스 기사를 포함한 세 사람만이 황량한 벌판을 채우고 있다.

버스 기사 두 명은 유일한 시설물인 자판기 옆 벤치에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고, 버려진 채 남겨진 유일한 승객은 버스에 앉아서 출발만을 기다리며 적막한 시간을 죽이고 있다.

타고 온 버스를 그대로 타고 가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버스에 밀착되어있는 유일한 승객을 발견한 기사는 다른 버스로 갈아타라고 말을 건네는데 귀찮은 껌딱지 떼어내듯이 취급한다.

다시 버스표를 구입하고 다른 버스로 환승해서 잠시 버스를 전세 내어 목적지를 향한다. 그렇게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길 위에 뿌리고 나서야 숙소에 도착하게 된다.

잠시 휴식 후 전열을 가다듬어 시내 탐방에 나선다. 마드리드 관광의 거점이 되는 솔 광장부터 방문해 볼 요량이다.

이 광장은 마드리드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아서 다른 관광지를 찾아갈 때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구글 지도에 의지하여 골목과 도로를 따라 다니며 돌아올 때를 대비하여 눈도장을 찍으며 걷는다.

한참 후 아치 형태의 출입구를 통과하니 와인색 벽에 하얀색 창틀로 만든 4층 정도 건물이 직사각형 형태로 둘러쌓은 축구장 몇 배 크기의 넓은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 가운데에는 기마상이 자리 잡고 있고 광장 주위를 둘러싼 건물의 1층에는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 가게, 관광 안내소 등이 자리하고 있다. 광장으로 통하는 문은 여러 개 있는데 그 사이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다. 검색해 보니 마요르 광장에 도착한 것이다.

이 광장은 중세에는 시장으로 사용되던 장소였는데, 1619년 주요 행사가 열리는 광장으로 건설된 후에는 왕의 취임식, 종교 의식, 투우 경기, 교수형 등이 치러지는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솔 광장이나 산 미구엘 시장을 찾기 위해 여래 개의 아치형 출입문 중 또 다른 방향의 출입문으로 나온다.

방향을 잘 모르니 사람들의 움직임이 많은 방향으로 따라가 본다. 지하철 역과 오페라 극장이 있는 광장을 지나니 길 건너에 크고 기다란 건물이 보인다. 직감적으로 그곳이 왕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왕궁과 광장을 공유하는 한편에는 현대식 풍의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마드리드 왕궁은 베르사유 궁전과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하며 사방 150m의 왕궁 안에는 2,800개의 방이 있는데 그 중 50개의 방만 공개하며 현재는 공식 행사에만 사용되고 왕이 실제 거주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왕궁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대성당은 지금껏 봐 왔던 다른 대성당에 비해 역사나 예술적인 완성도 면에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것 같다. 이곳은 알무데나 성당으로 부르는데 마드리드의 수호 성모인 알무데나 성모상은 이곳을 점령한 무슬림의 박해를 피해서 성벽에 숨겨 놓았는데 300년 후에 발견되면서 성당 건립의 계기가 되었다 한다.

18세기에 착공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1993년 완공된 성당이라 그런지 현대식 스테인드 글라스 등이 여행중 만났던 성당 분위기와 다르니 낯설게 느껴진다. 왕궁은 겉모습만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음 목적지 솔 광장을 찾는다.

솔 광장을 가기 위해 나선 길인데 마요르 광장에 먼저 도착하고 방향을 잘못 잡아 왕궁과 성당에 왔으니 이제는 제대로 찾을 일이다. 이런 해프닝은 긴 여행 중 비일비재하게 겪는 일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지만 순서가 뒤바뀐 것일 뿐 어짜피 방문해야 할 곳에 먼저 왔으므로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여행의 모든 과정이 자로 잰 듯이 한 치 오차 없이 맞아 떨어지면 즐겁고 만족스러울까? 솔 광장은 스페인 각지로 통하는 10개 도로의 출발점, 즉 국도의 기점에 해당하는 장소의 의미가 있다.

마치 서울의 도로원표(道路元標)를 세종로 부근에 세워 주요 도시와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점이 된 것처럼 말이다. 광장에 들어와 사통팔달로 뚫여있는 도로와 주변을 살핀다.

광장 한편에 있는 소귀나무와 곰의 조각상은 마드리드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어 많은 사람을 몰려오게 한다. 광장 주변은 레스토랑, 백화점, 쇼핑센터, 서점 등이 자리하여 관광객을 유혹한다.

활기가 넘치는 광장에는 거리공연을 하는 사람, 곰 조각상 주변에는 기념사진을 찍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입추에 여지가 없다.

곰의 발을 만지면 마드리드에 다시 온다는 예기를 들은 바 있어 사람들 사이에서 순서를 기다려 발도 만져보고 버스킹 구경을 하는 사이 날이 저물어 간다.

시장기도 돌고 몸에 피로도 올라온다. 숙소에 복귀하여 휴식을 취할 생각으로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다. 저녁 무렵이 되면서 길거리와 골목 여기저기에서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은 무리들이 점차 늘어난다.

스페인에 오기 전 스페인 프로리그 ‘라 리가’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레알 마드리드나 FC 바로셀로나 경기 중 하나를 관람하고자 예매를 시도한 적이 있으나 시즌이 종료된 시점에 방문하게 되어 라리가 경기 직관은 포기한 지 오래다.

축구시즌이 끝나 경기가 없는 날인데 무슨 이유일까? 궁금해서 검색을 해 보니 레알 마드리드와 리버풀의 UEFA 컵 결승전이 우크라이나에서 치뤄지는 날이아니가?

어딘가에서 모여서 응원하기 위해 이동하는 듯하다. 축구 실력은 떨어지지만 길거리 응원 만은 우리나라에게 한 수 배워야 할텐데.. 어쨌든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호스텔 근처에 중국인 슈퍼가 있어 살펴보니 우리나라 라면이 있다. 망설임 없이 라면을 챙겨 숙소식당에서 계란을 풀고 반주를 곁들여 포식을 한다.

식곤증으로 졸음이 몰려와 잠시 눈을 붙인다. 소란스런 소리에 눈을 떠보니 투숙객들이 로비에 모여 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앞자리는 이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어 뒷쪽 계단에 걸터앉아 그들과 함께 응원전을 펼친다.

리버풀의 주 공격수 살라흐가 전반에 부상을 당하는 악재가 생기더니 레알 마드리드가 리버풀을 3:1로 이겨 우승을 차지한다.

숙소 안팍으로 승리의 환호가 가득하다. 밖으로 나가 길거리 함성을 보고 싶지만 몸이 무겁다. 침대로 돌아가 2002년 월드컵의 열기를 느끼며 잠을 청한다.

호스텔 밖은 마드리드 시민들이 부르는 승리의 노래가 토요일을 넘기는 시각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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