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29 스페인 코르도바3, 메스키타의 대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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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29 스페인 코르도바3, 메스키타의 대실수
  • 류호진
  • 승인 2021.03.25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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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이상용 원장은 대전대학교한방병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대전 유성에 '용한의원'을 개원, 운영하고 있다.

 나의 여행기 29 (2018. 5.25.~5.26.) 코르도바 Cordoba 3

-안달루시아를 떠나며-

여느 때 보다 일찍 일어나 숙소를 나온다. 호스텔 바로 옆 플라멩코 박물관 주위는 밤 세워 불금을 보낸 젊은 관광객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댄다.

에소프레소 한 잔으로 몸을 덥히고 소음에서 벗어나 과달키비르 강변에 이르니 동이 터오르며 여명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발걸음은 로마교를 향한다.

코르도바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방문하고 해 질 무렵 또 찾고, 이른 아침 찾아가는 로마교는 무슨 힘으로 나를 그곳으로 이끄는가? 만유인력처럼 나를 잡아당기는 마법을 부리는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로마의 부흥기에 탄생하여 서고트 왕가와 이슬람 세력의 중심이 되었다가 기독교의 패권으로 마무리 되는 흥망성쇠를 지켜보던 역사의 무게일까?

2000년의 세월 동안 한결같이 승리자에게 길이 되어주고 강물을 흘려보내던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고요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다리의 중앙에 세워진 라파엘 수호천사 석상 아래에서 하늘거리는 촛불을 지키며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경건하다. 석상을 지나자 로마교의 감흥이 빠르게 옅어져 간다.

다리 건너편에서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는 커다란 건축물이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시선이 고정되고 발걸음은 그 방향을 향하여 자율주행한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선 것도 저곳으로 가기 위함이다. 메스키타! 8세기 후반에 건축하여 스페인 이슬람 사원의 중심이 되었다가 국토 회복 운동 후에는 가톨릭 성당을 사원 중앙에 만들어 한 공간에 두 개의 종교 양식이 공존하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종교 건축물로 코르도바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이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메스키타이므로 로마교는 어페타이져 정도에 족하다. 코르도바의 주요 포인트는 돌아봤으니 메스키타 만 보면 남는 장사가 된다.

오전 8시 이전에는 무료 관람이라니 아침 일찍 찾은 이유다. 설레임과 기대를 가득 안고 출입문을 찾았는데 닫힌 문에 허접하게 인쇄된 입장 시간 안내용지가 바람에 나풀거린다. 틀린 정보를 안고 왔단 말인가? 그라나다의 트라우마가 살아난다.

불길한 실패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발걸음을 돌린다. 10시 입장이면 1시간 전에 돌아오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주변 탐방에 나선다.

건축물 사이 골목길을 지나는데 추르스 가게 근처에서 풍기는 구수한 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하니 아침 식사를 거르고 돌아다녔다는 것을 자각하게 한다.

세 쪽의 추르스를 구입하여 허기를 달래고 시내 구경을 해 보지만 마음은 메스키타에 몰려 있다. 다시 메스키타로 간다. 8시 조금 넘은 시각인데 이미 문은 열려있고 많은 사람이 몰려와 줄을 서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정보는 하나도 쓸모가 없다. 그라나다의 악령이 따라온 것 같다. 메스키타 입장하는 끝에 서서 1시간 넘게 기다리다 매표소 앞에 당도했는데, 아불싸! 전망대 종탑에 오르는 대열에 서 있던 것이다. 시간을 허비할 대로 다 써버리고 시간을 보니 다음 행선지로 예매해둔 마드리드 고속열차 탑승시간이 떠오른다.

메스키다 입장이 빨리 진행된다는 가정하에 시간 계산을 해본다. 한 시간 기다리다 매표하고 관람에 2시간을 잡으면 최소한 3시간이 필요하다. 관람을 마치면 마드리드 고속열차는 타지 못한다. 입장을 강행하면 열차표는 날리고 마드리드에 오늘 도착 못할 수도 있다...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 전망대 종탑에라도 오르고 싶지만, 전망대 입장 인원을 제한하다 보니 매표하고 또 기다려야 한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전망 탑과 메스키타를 둘러보기 위한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예상했는데 줄을 서 있는데 반은 써 버렸고 입장을 기다리는데 기약 없이 시간만 흐른다. 결단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끝내야 한다. 대기하던 줄을 벗어나는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 자책과 아쉬움, 섭섭함이 뒤 섞이며 마음이 극도로 심란 해진다. 오렌지 정원과 회랑을 둘러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린다.

짐을 꾸리고 숙소를 나와 근처에 있는 플라멩코 박물관으로 개조한 포토로 광장의 돈키호테 여관과 이 지역 출신 화가의 미술관을 관람 후 마드리드행 고속열차를 타기 위해 역을 향한다.

안달루시아!! 이슬람 문화의 영향과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고 신대륙발견과 무적함대를 거느리며 세계를 호령하던 당시의 중심이 되었던 곳, 플라멩코의 춤과 노래에 깃든 집시들의 삶과 애환을 느껴보며 여러 도시를 찾아다녔다.

치밀한 준비와 정보가 부족하여 좌충우돌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하였고 그라나다와 코르도바에서는 뜻대로 되지 않은 일도 있었다.

안달루시아는 그렇게 아쉬운 여운을 주고 다시 오라는 숙제를 남긴다. 내게도 집시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 않을까 하는 상념 속에 마드리드 행 고속열차는 올리브 나무 밭이 끝없이 이어지는 안달루시아 평원을 가로지르며 나아간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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