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25 그라나다에서 낭패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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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25 그라나다에서 낭패의 추억
  • 류호진
  • 승인 2021.02.0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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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이상용 원장은 대전대학교한방병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대전 유성에서 '용한의원'을 개원, 운영하고 있다.

나의 여행기 25 (2018. 5.23.~5.25.) 그라나다 Granada 3

그라나다를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알함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서 일 것이다. 궁전을 보기 위한 일념으로 일찍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니 어두움을 밝히는 가로등이 깜빡거리며 졸고 있다.

골목을 헤치고 거리를 가로질러 궁전으로 올라가는 버스가 출발하는 카톨리카 광장에 도착해보니 첫차가 운행하는 시각까지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가까운 바에 들어가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이른 아침의 허기와 추위를 달래본다. 가장 먼저 도착한다고 새벽 차를 타고 갔지만 매표소 앞에는 먼저 도착한 사람이 만든 줄이 제법 길게 늘어져 있다.

대열의 끝부분에 합류하였지만 얼마의 기다림 쯤이야 알함브라를 보기 위한 댓가로는 약과라 생각하며 부푼 기대와 희망으로 망부석처럼 그 자리를 지킨다.

시간이 흘러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니 매표소 광장 중앙에는 단체 관광객이 그룹을 지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잠시 후 그들은 인솔자를 따라 출입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새벽부터 매표소 외곽에서 기다린 사람들은 그 자리 그대로인데 저들은 오자마자 입장을 하다니? 매우 불합리한 일이 발생하거나 뭔가 잘못된 것임이 틀림없다.

상황판단이 되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만 앞선다. 심란함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와중에 매표소 앞 스피커에서는 관람시 주의사항에 대한 안내방송을 시작한다.

입장도 못한 사람에게는 소용없는 헛소리라 치부하는 순간, 인터넷 예매한 사람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말이 섞여 들린다. 럴수 럴수 이럴수가??? 안내 책자에는 현장 예매가 가능하다 했는데... 부랴부랴 핸드폰을 열어 웹 사이트에 접속해서 예약을 시도해 본다.

여권번호를 기재하고 진행하는 과정은 순조로운데 신용카드 등록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긴다. 2개월의 여행 일정을 감안하여 전화를 2개월 사용정지하고 로밍 서비스 대신에 장기 사용 가능한 유심 칩으로 바꿔서 사용하던 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ㅠㅠ

여태껏 유심 칩을 한달 이상 사용하여도 불편함이 없었다. 한국과 연관된 업무나 소통은 카카오 써비스가 해결해 주었다.

카톡과 보이스 톡으로 소통하며 소식을 주고 받고, 전파 상태가 좋은 곳에서는 페이스 톡도 가능했으며,심지어 금전거래나 애경사 해결도 카카오 뱅크가 해결해 주었으니, IT 강국 대한민국이 스페인 보다 우월한 것도 있는 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지며 여행을 즐겼는데, 바뀐 유심 칩으로는 카드 인증이 되지 않는다. 여러번 시도했지만 같은 결과로 이어진다.

본인 카드 인증이 안되는 초유의 사태로 말미암아 예약을 할 수 없는 사실에 기가 막힌다. 20 유로도 안되는 입장료 결재 불능 때문에 10m 앞에 궁전 입구에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인가?

청천벽력이 따로 없다. 이대로 물러서야 하나? 카카오 톡으로 한국에 연락하여 해결책을 알아보지만 방법이 없다. 절망적이다. 알함브라 성에 가보지 못하는 그라나다 여행은 앙꼬 없는 찐빵인데... 파리와 산티아고 길,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여기까지 왔지만 이처럼 커다란 낭패감을 맛본 적은 없었다.

알함브라에 입장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다 갖은 듯이 의기양양하게 보인다. 부러움과 허탈감 속에서 매표소 광장을 한동안 떠날 수 없다. 매표소 위 언덕의 한적한 오렌지나무 군락에서 보이는 담장을 넘어서라도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좌절의 현장에서 빨리 벗어나야만 한다. 기차형 관광차에 올라 시내를 돌아보며 아쉬움을 달래보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순환형 관광차는 두 개의 관광 코스로 구분한다.

이사벨 라 카톨리카 광장과 누에바 거리는 그라나다 관광의 베이스캠프가 되어 관광용 차량을 타고 이동할 때 마다 출발지가 된다.

알함브라 관람을 위하여 준비한 한나절의 시간을 매우려고 대성당, 왕실 예배당, 알카이세리아, 칼데레리아 누에바 거리를 돌아보며 그라나다의 정취를 더 느껴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알함브라의 미련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호스텔의 호스트에게 부탁하면 해결할 방법도 있을 수 있겠다 싶은 마음에 관광을 중단하고 호스텔로 돌아와 부탁을 해본다.

돌아오는 답은 부킹은 도와줄 수 있으나 본인 실명으로 등록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아침 일찍 시도한 방법과 같은 인증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예약은 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알암브라 궁에 입장하는 것은 이번 방문에는 불가능하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그라나다를 보기 전에는 죽지 말라”했으니 그라나다를 못 본 사람도 있으니 핑계삼아 다시 와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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