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21 순례길에서 만난 성당의 추억- 말라가 대성당 ’하나의 팔을 가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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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21 순례길에서 만난 성당의 추억- 말라가 대성당 ’하나의 팔을 가진 여인‘
  • 류호진
  • 승인 2021.01.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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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이상용 원장은 대전대학교한방병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대전 유성에서 '용한의원'을 개원, 운영하고 있다. 

 

나의 여행기 21 (2018. 5.22.~5.23.) 말라가 Málaga 1

말라가로 가는 버스는 청명한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과 올리브 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진 구릉진 비탈 사이로 길게 늘어진 도로를 달린다.

말라가는 지중해성 기후를 가진 항구 도시로 태양의 해변(Costa del Sol)을 이루는 중심 역할을 하며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세비야 다음의 큰 도시로 파블로 피카소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보니 먼 거리에 솟아있는 말라가 대성당 종탑이 보인다. 시 외곽 버스터미널에서 시내 중심가에 예약한 숙소까지 가는데 구글 지도를 작동하여 안내를 받기는 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감각에 의지하여 건물 사이로 보이는 대성당 종탑을 바라보며 방향을 잡아 찾아가는 원시적 방법이 효율적이다. 큰길을 건너고 교차로를 지나며 골목을 빠져나와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는데 1시간 이상을 도로 위에 뿌리게 된다.

늘 그렇듯 방을 배정받고 배낭을 내려놓는다. 어깨를 짓누르던 배낭을 벗는 순간 긴 호흡과 함께 안도감이 샘 솟는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숙소를 나오면 처음 방문한 도시는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 것인가 하는 호기심과 기대가 충만해진다. 말라가의 신도심과 구도심은 골목과 골목 사이에 공존하고 있다.

신도심에 있는 호스텔을 나와 골목 사이를 비집고 나아가니 대성당 앞 광장이다. 말라가 대성당은 16세기에 짓기 시작해서 18세기에 완공했다 한다. 이렇듯 오랜 시간 동안 지어진 건축물은 여러 건축양식이 혼합되기 마련인데 고딕이나 바로크 양식도 보이지만 건물 중앙의 커다란 돔과 기둥이나 창 모양이 그리스와 로마 건축물을 닮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귀결된 듯 보인다.

두 개의 종탑을 설계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하나의 종탑만 만들어져 균형이 깨진 듯한 외부 모습은 ‘하나의 팔을 가진 여인(La Manquita)’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말라가 대성당의 상징물이 되었다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여행 중에 방문하거나 스쳐 지나간 성당은 백 수십여 곳이 된다. 카톨릭 문화권의 여행길에서 가장 흔하게 성당을 마주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당은 한결같이 도시나 마을의 중심에 자리 잡고 규모와 높이, 화려한 장식으로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처음 방문한 노트르담 대성당의 장엄한 규모에 압도되어 느꼈던 경건함과 엄숙함은 강렬하게 다가왔으나 그 이후에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성당에 대한 감흥은 각각 다르게 다가오며 약해져 간다.

수탈과 희생의 흔적 위에 세워진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과 종교적 영성에 어떤 도움이 될지? 예수가 흘렸던 피의 가치를 화려함으로 덮을 수 있을까?’하는 산티아고 길의 레온 대성당에서 처음 느꼈던 비판적 사고가 짙어져 간다.

좁다란 골목길을 걸어 나오니 보라색 자카란다 꽃이 파란 하늘에 떠 있고 넓은 광장 주변을 둘러싼 카페에서 오후의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피카소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 메르세드 광장이다. 장난기가 발동하여 벤치에 앉아 있는 피카소의 머리를 쓰담하며 사진도 남겨 본다.

광장 근처에 피카소의 생가가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으나 팻말도 없고 그 집이 그 집 같은 비슷한 모양의 건축물에서 피카소의 생가 찾기는 종로에서 김서방 찾기와 맞먹는다. 이쯤 어딘가에 있겠지 하는 믿음만 남겨 놓고 발길을 돌린다.

다음 목적지는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이슬람의 문화 유적이다. 알카사바(Alcazaba)는 무어인들의 주거와 군사적 방어시설이 결합된 요새라 할 수 있는데 여러 도시에 흔적이 남아있지만 말라가 알카사바는 스페인에 남아있는 것 중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다고 한다.

아기자기한 정원과 섬세하게 장식된 건물을 보면 아랍의 정교한 건축문화를 느낄 수 있다. 아랍식 건축물의 최고봉은 다음 방문지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라 생각되기에 기대가 된다. 알카사바와 로마식 원형극장을 보고 더 나아가면 ‘히브랄로파’성에 이르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온다.

날씨가 그리 덥지 않은 덕분에 생수 몇 모금으로 갈증을 다스리기에 충분하다. 요새로 오르면 말라게타 해변과 지중해, 투우경기장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더 높이 올라가면 성벽 길을 따라 도시 전체를 조망하며 돌아본다. 힘들게 올라온 보상은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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