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16 오랜 여행에서 채득한 것 (한의사 이상용 원장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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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16 오랜 여행에서 채득한 것 (한의사 이상용 원장 가이드)
  • 류호진
  • 승인 2020.12.11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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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이상용 원장은 대전대학교한방병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대전 유성에서 '용한의원'을 개원, 운영하고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상용 원장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여기에 옮겨 놓는다.

나의 여행기 16 (2018. 5.19.~5.21.) 세비야 Sevilla 1

늘 그랬던 것처럼 버스에서 내려 배낭을 메고 부킹 닷컴에서 예약한 숙소를 찾아간다. 구글의 안내를 받으며 가는 길은 좌충우돌 하면서 헤매는 일이 반복되지만 믿고 의지할 유일한 수단이다.

택시를 타면 쉽게 해결될 문제이지만 내가 세운 원칙을 지키고 싶으니 시간이 지체되고 더 많이 걸어도 뚜벅뚜벅 걸어서 찾아간다. 1개월 이상 짊어지고 다니며 생존을 도와주는 배낭이지만 오래 메고 걸으면 무거움은 여전하다.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는 순간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도심의 건물 사이 공간으로 하늘에 가장 가깝게 솟구쳐있는 탑이 보인다. 성당의 첨탑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산티아고 길을 걸었을 때와 여타의 크고 작은 도시 어디를 가나 높은 첨탑이 보이면 성당이 있고 성당이 위치한 곳은 오래된 도시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50일 정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경험으로 체득한 것이라고 할까? 발길은 그곳으로 향한다. 아홉 번 꺾인 양의 창자 같은 꼬불꼬불하고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서 빠져나오니 거대한 건축물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크기를 가늠할 수가 없다.

스페인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도 3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는 세비야 대성당이다. 놀라움과 흥분으로 어깨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도 잊은 채로 성당 주변을 따라 걸어보면서 윤곽을 파악하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예약한 호스텔을 찾아가 등록하고 짐을 내려놓은 후 다시 성당으로 달려간다. 이슬람으로부터 영토를 회복한 스페인은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후 세계 최강의 국가로 발돋움하게 되는데 세비야는 중추적 역할을 하는 도시가 되면서 세계적 도시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이슬람 세력에게 지배받았던 트라우마를 보상하기 위함인지, 최강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함인지 몰라도 그들은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고딕 양식의 대성당을 건설하여 16세기에 완성하게 된다. 성당의 여러 출입구 가운데 눈길이 가는 출입문이 있는데 그곳에는 성당의 건축양식과는 다소 이질적 형태로 솟아 있는 종탑이 있다.

히랄다 종탑이라 불리는 100m 높이의 탑은 유료 입장을 해서 나선형으로 된 돌계단을 오르고 오르면 세비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이슬람 사원의 첨탑을 허물지 않고 성당 건축에 활용한 당시 그들의 문화의식 내지는 자신감을 느끼게 된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예루살렘 홀로코스트(Holocaust) 역사박물관처럼 스페인 사람의 민족혼을 일깨우는 의도까지는 아니겠지만 다른 종교의 문화유산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그들의 너그러움과 여유가 부럽다.

우리나라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사벨(Isabel la Católica) 여왕이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해 신대륙을 발견하고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흔적은 대성당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성당 내부에 입장하면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들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소 예배당 등을 둘러보는 데 시간이 부족할 정도이다.

메인 예배당 제대에 있는 조각상은 신대륙에서 가져온 1.5톤의 금 조각으로 장식되었다고 하니 화려함과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마음 한 편에서는 스페인이 침략지에서 수탈한 금은보화 덕분에 이처럼 사치스러운 대성당을 건립하게 된 거라는 생각이 미치자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느꼈던 레온 대성당의 씁쓸함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다 마침내 신대륙을 발견하여 스페인은 세계 최강국으로 도약시킨 콜럼버스는 부와 명예를 얻게 되지만, 그의 후원자 이사벨 여왕의 사후에는 업적이 배척을 당하고 재산이 몰수되고 타국에서 초라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스페인 왕실에 대한 섭섭함과 한을 남기고 숨을 거둔 콜럼버스의 유해는 타국을 전전하다 우여곡절 끝에 대성당으로 돌아오게 된다. 유언대로 그의 관은 땅에 묻히지 않고 네 명의 왕이 떠받히는 형태로 공중에 떠 있다.

콜럼버스의 관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은 15세기 스페인의 왕국이었던 네 명의 왕인데 앞쪽 두 명은 그를 후원해준 레온과 카스티야 왕으로 얼굴을 들고 있고, 뒤쪽의 두 명은 후원하지 않은 나바라와 아라곤왕이 얼굴을 숙이고 있는 모습이다.

콜럼버스의 묘는 공식적으로 도미니카의 산토도밍고에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진위 여부를 떠나 그의 관이 세비야 대성당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의 유언에 대한 스토리와 신대륙을 발견을 위하여 첫 항해를 떠난 도시 세비야를 상징함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성당 부근에는 알함브라의 나스르 궁정을 모티브로 만든 알 카사르 궁전이 위치한다. 그곳에 입장하기 위해 긴 줄 끝에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1시간으로 부족하다. 입장권 예매를 한 사람들은 바로 입장을 하는 모습이 부럽지만, 관광지 시스템에 대한 정보력이 부족하니 시간과 몸으로 때워야 하지 않은가?

스페인의 건축양식과 이슬람 건축물이 주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독특하다. 특히 무데하르 양식의 화려함과 섬세함은 감탄을 자아낸다. 궁전의 후원에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가져온 식물들로 꾸며놓은 넓은 정원과 숲이 있어 휴식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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