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이끌 과학人] “과학만능 시대에도 사람의 자리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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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이끌 과학人] “과학만능 시대에도 사람의 자리 필요하다”
  • 김찬혁 기자
  • 승인 2019.09.11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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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카이스트 교수 “과학과 사회의 접점 고민해야”
알파고·자율주행차·세월호 등 한국사회 이슈속 과학 책무 고민
전치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찬혁 기자

“과학은 단순히 가치중립적인 지식이 아니며 윤리나 제도, 정치와 동떨어진 학문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위한 기술인지 늘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스스로를 과학의 핵심이 아닌 ‘과학의 언저리’를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전치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10일 대전 독서모임 백북스에서 만난 조교수는 “기계가 필요한 곳에 기계를, 사람이 필요한 곳에 사람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하며 4차산업혁명 시대에 한국사회가 놓치고 있는 사회적·정치적 논의들을 언급했다. 

전 교수는 과학기술사회론(STS·Science Technology Society)을 전공했다. 자신의 전공에 대해 “과학과 사회의 접점을 찾아내는 게 역할”이라고 소개한 그는 “그래서 칼럼의 제목도 ‘과학의 언저리’”라며 “과학의 핵심보다도 과학의 경계를 보는 활동을 주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의 이사를 맡고 있는 전 교수는 지난 4월 칼럼집 ‘사람의 자리’를 발간했다. 2016년 여름부터 썼던 30여 편의 칼럼들과 기고문을 엮었다. 

다양한 주제로 칼럼을 써온 전 교수는 “로봇, 자율주행차, 정치, 세월호 등 그동안 썼던 칼럼의 주제가 다양하다”며 “칼럼을 쓸 때 자료나 뉴스를 찾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관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2016년 3월 한국에서는 이세돌 구단과 알파고와의 대국이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5주기를 맞아 온 국민이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인공지능에 보인 소란과 후쿠시마 재난 앞에서의 침묵 모두 과학기술을 둘러싼 우리의 반응”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세돌 구단과 알파고 대국 당시 취재진과 함께 현장에 있었다는 전 교수는 “대국이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심각해졌다”며 “해설을 통해 인류의 위기나 심지어 터미네이터 얘기까지 나오기도 했다”며 청중을 웃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바둑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거대한 뭔가가 다가오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자문위원 활동 당시 느낀 점을 말하고 있는 전 교수 모습. 김찬혁 기자

아울러 전 교수는 “‘인간이 기계에게 패배했다’는 생각이 팽배하던 시기에 대국이 열리는 호텔을 가기 위해서는 광화문 광장을 통과해야 했으며 그 광장에는 세월호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며 “알파고와 세월호가 공존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과학은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고 말했다. 

이후 전 교수는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과학계의 책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며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유가족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또 “현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과학자들을 늘 반길 만큼 세월호 인양까지 4년간 그들 곁에 있었던 과학자가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꼬집었다. 

또 제주 현장실습 고교생 사망사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등을 언급하며 “기술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 기술을 뒤에서 유지 보수하는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전 교수는 ‘메인테이너(maintainer)’라는 단어를 소개했다. '메인테이너'는 ‘유지하다’, ‘지속하다’라는 뜻의 동사 ‘메인테인(maintain)’에서 생겨난 말로, 기술을 운용하고 관리·보수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는 “자율자동차, 무인공장, 인공지능 판사, 로봇 선생님 등 4차산업혁명 기술이 보편화되면 사람없이 돌아갈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 뒤에서 돌보는 사람이 없으면 사회는 멈출 것”이라며 “기계가 필요한 곳에 기계를, 사람이 필요한 곳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기술을 유지 보수하는 사람을 뜻하는 ‘메인테이너(maintainer)’라는 단어를 소개하며 이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찬혁 기자

전 교수는 과학자의 책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과학자는 전문가인 만큼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자기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기계적이고 수학적 판단이 아닌 전인격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진실과 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교육기관과 전문가들이 시민들에게 과학 공부를 권한다”면서도 “그때의 과학은 교양으로서의 과학”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양도 좋지만 과학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역할이나 의미에도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과학 이야기가 신문 정치면에도 실리고 문화면에도 실려서 일반 독자들이 과학의 사회·정치·문화적 의미를 읽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서 과학기술이 사람보다 우선시되는 것을 경계하며 사람의 자리를 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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